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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 14.
PART 1 : 전차의 도입 | 문명의 충격과 의식의 변화 : 시공간 감각의 재편 : 『한국에서』 에밀 부르다레, 1904년을 보자. 한국에서 그래서 대한제국이 탄생을 했을까? 전차 개통 이후, 홍릉이나 한강 인근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상지가 되었다고 한다. 홍릉은 80년대 중후반 서울 살면서 들어 본 적이 없다. 서오릉은 들어도 보고 가보기도 했다. 80년대뿐 아니라 필자는 요 근래 역사 연구하면서 홍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밀 부르다레가 전차로 홍릉을 간 이야기라고 한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절이나 한강 등지로 전차를 타고 간 이야기를 적고 있다. 1904년에 발행된 책이 거의 새 책이다. 세월의 흔적이 거의 없다.
“전차를 타고 떠난 산책 : 첫날부터 명성황후 묘지(홍릉)까지 산책하기란 이제 막 도착한 사람에게는 버거웠다.… 나는 이 산책을 전차를 타고 빠르게 하는 편을 선택했다. 서울에서는 가장 실용적인 운송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름날 저녁에 전동차는 청년들 무리로 넘쳐난다. 그들은 절이나 한강을 찾아 종점까지 가며 민요를 부른다.” 에밀 부르다레. 1904년, 42~43쪽. 이다 80년대 중반인지 서울에서 유일하게 가는 곳이 안양유원지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부천에서 놀이 공원 가는 곳은 월미도였다.
한강은 사람들이 유원지로 가기 시작한 것이 얼마 안 된 것으로 안다. 선착장 만들었다고 한강 엄청 선전을 해서 필자도 가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여의도 한강을 갔는데 몰게 없었다. 횡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필자가 자전거를 배워 한강 자전거타고 많이 갔다. 자전거 말고는 여의도 공원 벚꽃 구경 말고 할 것이 있나. 시골은 안 움직여도 산천이 아름다웠다. 봄에는 연두색, 여름에는 녹색. 가을에는 갈색, 겨울에는 흰색 잎이 다 떨어진 나무도 아름다웠다.
홍릉 근처 서양요리 음식점 광고 : 《독립신문》 1899년 9월 23일 | 한국언론진흥재단을 보자. 전차의 등장으로 홍릉으로 나들이를 나가 외식을 하곤 했다고 한다. 《독립신문》 광고에 따르면 윤릉주라는 사람이 흥릉 앞 전차 정거장 앞쪽에 요히점을 개설하여 서양요리를 판매했다고 한다. 근교로의 나들이와 외식은 전차의 등장이 가져다 준 부산물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레스토랑이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 레스토랑에서 피자도 팔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피자 먹고 늦기하고 체해서 어지러워 걷지도 못하고 들려 나온 것이 생각이 난다.
페밀리 레스토랑도 유행이었다. 1980년데 중반 이후이다. “홍릉 앞 서양 요리집 : 홍릉 앞 전기 철로 정거장에 대한 사람이 새로 서양 요리를 만들어 파는데 집도 정결하고 음식도 구비하오니 내 · 외국 손님들은 많이 오시면 소청대로 하여 드리이다. 윤룡주 고백” 《독립신문》 1899년 9월 23일자 광고. 광고지는 양지이다. 윤룡주는 윤동주 시인이 생각이 난다. 윤동주 시인을 만든 사람이 이 스토리도 쓴 것인가? 세로 글쓰기는 아래아 한글로 작성을 했을까? 워드로 작성을 했을까? 예전에 책 편집은 맥 컴퓨터로 한다고 들었다. 필자는 맥컴퓨터를 구경해본 적이 없다. 갖고 싶었었다. 바램으로 끝났다. 아직도 구경을 못해봤다.
『독립신문』은 1896년에 창간했다가 1899년에 해체를 했다고 한다. 설립단체는 독립협회라고 한다. 서재필이 사장이었고, 유길준, 윤치호, 이상재, 주시경 등이 필진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919년 창간, 1932년 휴간, 1933년 복간, 1943년 종간 이고아수 등이 사장이고 안창호 등이 필진이었다고 한다. 1943년에도 신문은 발행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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