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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82] 영화 암살자(들). 18 100-082 영화 암살자(들). 18 편지의 첫 문장은 “근혜야, 이것이 웬 일이냐”였다고 한다. 코메디다. 코메디, 이게 웬일이라냐 라는 말이 나올 소리인가? 이게 뭔 날벼락이냐가 맞을 것 같은데 말이다. 원문에는 ‘웬’자를 ‘왼’자로 썼다. 나이 먹은 사람이 쓴 것 같다. 박정희 역한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어서 썼을까? 필체나 맞춤법 받침으로 보아 젊은 사람 글씨는 아니다. 나이가 상당히 있는 사람이 썼다. 박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먼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비통한 마음 억제할 길 없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어머니가 안 계시는 우리 가정을 다시 가다듬어 나가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되지 않겠니”라고 적었다고 한다. 옛날에 아버지 혼자 가족들을 부양할 때 가장이 죽으면 부인은 하늘이.. 더보기
[100-081] 영화 암살자(들). 17 100-081 영화 암살자(들). 17 필기구가 볼펜이 아니고 수성펜 같기도 하다. 종이가 전체적으로 깨끗하다. 유영하 국민의 힘 의원이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편지라고 하는데 말이다. 볼펜으로 쓰면 누른 흔적이 보일 것 같은 종이인데 눌러서 쓴 흔적이 없다. 1974년에 실제로 썼다면 52년 된 종이다. 멀쩡하다. 1986년 10월호인가 잡지 부록은 누래지다 못해 갈색이 되었다. 그보다 12년 앞선 종이가 새것이다. 번호는 왜 썼을까? 암튼 아래 기사 내용을 보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4년 부인 육영수 여사의 피격 사건 직후 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낸 친필 편지가 처음 공개됐습니다. 이다. 웃음만 나온다. 국민의 힘 유영.. 더보기
[100-080] 영화 암살자(들). 16 100-080 영화 암살자(들). 16 토지대장으로 보면 ‘잡종지’에서 ‘대’가 1990년 12월 7일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건물은 199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해도 될 것 같다. 필자 머리에 1987년이 꽂혔나 보다. 영화 암살자(들) 나무위키 분석은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1974년은 호롱불을 키고 살았다. 박정희부터 픽션이다. 2026년 10월 2일 유영하 국회의원이 공개한 박정희 친필 편지 공개 기사를 보고 영화 암살자(들)은 마무리 하겠다. MBN 「“근혜야, 이것이 웬일이냐” … ‘암살자(들)’ 논란에 박정희 친필편지 공개」입력 2026.10.02. 오전 9:57 피격 이틀 뒤 박정희가 유학 중인 달 박근혜에 써 편지엔 “아버지가 맞을 흉탄 어머니가 대신 맞아” 유영하 “영화 없었다면 공개.. 더보기
[100-079] 영화 암살자(들). 15 100-079 영화 암살자(들). 15 필자는 동네 아저씨들의 호적상 나이가 실제 나이와 다르다고 본다. 27년생은 모르겠다. 29년생 필자네 씨다른 작은 아버지는 임실 현충원에 묻혔다. 군대 가기 싫어서 엄지손가락을 잘랐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작두로 잘린 것이다. 작두는 언제 들어왔을까? 1971년 이후라고 본다. 필자네 집도 소 키울 때 작두가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 아이들이랑 놀면서 작두로 풀을 썰어보고 싶어서 동네 아이에게 작두를 밟으라고 하고 필자가 풀을 멕이다가 필자 손가락 절단 날 뻔했다. 그때가 필자가 국민 학교 졸업하고 같다. 우리 집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때가 필자가 수작골 교회 다닐 때 같기 때문이다. 아직도 검지손가락 중간 마디에 작두로 벤 상처가 선명하다. .. 더보기
[100-078] 영화 암살자(들). 14 100-078 영화 암살자(들). 14 고바우 영감은 1980년대는 신문을 못 보았으니 모르겠다. 고바우 영감을 검색해보니 한국 만화/ 4컷 만화/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동아일보/ 조선일보/ 1955년 만화 이다. 시사만화가 김성환 작가가 1955년부터 2000년까지 연재한 4컷짜리 시사 풍자 신문만화라고 한다. 신문에 짧은 만화가 있긴 했다. 고바우 만화가 있었다면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같은데 1980년대 후반에 신문을 못 본 것 같다. 신문에 대한 기억이 1980년대는 없다. 신문에 대한 기억은 국민일보이다. 오산리 기도원가면 신문 구독하라고 광고를 많이 했다. 필자가 오산리 기도원을 다닌 것은1990년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잠깐 다녔었다. 그때부터 인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