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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 75.
PART 02 : 궤도와 바퀴는 사람들의 발이 되고 : 정거장 사이의 일상과 풍경 : 만원(滿員)전차 : 학생들과 전차 : 휘문고등학교 졸업앨범 1938년 이미지를 보자. 이 이미지는 여러 개의 이미지를 겹쳐 놓고 찍었다. 만들었는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겠다. 첫 번째 이미지는 책꽂이 같다. 책이름이 하나도 안 보인다. 책 위에 상자와 스프링 큰노트 같이 보인다. 그 시절에 스프링이 있었는가? 두 번째 이미지는 천장은 빗살무늬가 어지럽게 보인다. 각이 진 기둥이 보인다. 도서관이라고 만든 것인가? 책인지 무언가는 쌓여 있다. 오른쪽에 교복에 모자를 쓴 남학생들이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앞에는 여자가 앉아 있다. 옷이 일본 옷 같이 보인다.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단정하게 했다. 얼굴은 엣 되어 보인다. 앞에 학생들보다 어려 보이는데 학생 같지가 않다. 선생이나 사서처럼 보인다.
세 번째 이미지는 소나무인지 큰 나무 가지고 위에 보이고 아래에 그 나무를 기대어 학생들이 서 있거나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있다. 다리가 꼭 시체 같다. 남학생이 멀리서 뛰어 오고 있다. 그 앞에 남학생은 팔을 괘고 옆으로 누워서 앞에 누워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다. 학교 안이 아니고 어디 야산이나 공원으로 보인다. 밑에 살짝 보이는 것들은 생략하겠다. 가운데 전차가 또 등장한다. 230이라고 써져 있다. 앞문에는 차장인지가 고개를 내밀고 정면을 보는 것 같다. 오른쪽 문으로 학생들이 줄을 서서 가방을 들고 전차에 오르고 있다. 저 가방이 학생가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창틀이 유리를 끼우기에는 너무 작아 보인다.
만원전차 고난기 1일 승차 24만 전차 통학 3만인 타는 사람은 많은데 전차 대수 부족 배차 간격도 불균형 《조선일보》 1938년 6월 4일 신문을 보자. 24만이 전차로 승차는 24만 통학은 3만인이 하루에 탔다고 한다. 전차도 작은데 그걸 가지고 24만을 실어나 나르면 전기를 엄청 소비 했을 것 같다. 1900년대 초반에 서울에 사람이 살았을까 필자는 의문을 갖는다. 계획도시를 만든 자들은 천 주변에 만들었다. 천에 제방을 쌓고 땅을 말린 다음에 거기에 도시를 만든 것이다. 집성촌은 산속에 계곡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었다면 도시는 천을 끼고 도시를 만든 것이다.
신문에 전차 이미지를 실었다. 가운데 커다랗게 전차 정면이 보이고 양쪽으로 창문을 열어 놓았다. 전차 앞에 목침인지도 보인다. 우리가 이제까지 본 전차레일은 목침이 보이지 않았다. 레일이라고 두 줄만 그어 놨을 뿐이었다. 신문에는 커다랗게 가로로 목침을 그려 놨다. 전차 양쪽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방을 든 사람도 보인다. 기사는 한자와 한글 혼용이다. 세로로 써져 있다. 기사 내용이 길다.
비상시 학생은 걸어다니라! 긴급동의, 도보통학 《조선일보》 1939년 6월 1일도 보자. 여학생들인지가 세 명이 하얀 셔츠에 멜빵 치마를 집도 가방을 무겁게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앞에서 보았던 전차 노선에서 보면 거리가 십리 안팎이었다.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다. 1970년대 십리 길 뿐 아니라 읍내에 장을 보러 가도 걸어 다니기도 했다. 한정거장 거리도 전차를 타고 다녔다고 하는 것 같다. 필자가 도시 나와서 짧은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나중에 거리를 알고 나서는 왜 내가 이 거리를 버스를 타고 다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할 때만 버스를 타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가까운 거리였는데 지리를 모르고 낮설으니 모조건 버스부터 탔던 것이다. 이 신문 역시 한자 혼용에 세로로 쓰여 졌다.
경성전기학교 토목부 졸업앨범 1942년 이미지를 보자. 전차를 타려고 줄을 서 있다. 저 사람들은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 토목무 학생들이 연령대가 10대 후반이라면 말이다. 이십대 후반 30대 이상으로 보인다. 특히 가운데 키 큰 남자는 나이 들어 보인다. 우리가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는 학생들이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인다. 고등학생 같지가 않은 이유는 실제로 고등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배우들이라고 본다. 그것도 3~40대 좀 어려보이면 20대 후반 배우들이라고 본다. 앞장에서도 말했지만 졸업사진은 학교에서 부른 전문 사진사가 학교로 와서 개인과 단체, 전체 사진을 찍어 앨범을 제작했다. 학교 밖에서 전차를 다는 장면을 앨범에 넣을 수 있나? 서울의 전차 집필 팀이 없는 학교에 앨범은 넣어야 겠고 전차가 주제이지 전차 타는 이미지를 만들어 졸업 앨범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원가 석연찮을 때 양심을 말한다. 가짜 역사 만들어 문화재 만들고 사소한 것 까지 거짓으로 자료들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이 자료를 만들 때 양심에 가책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신나서 자료들을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짜 자료를 만든 사람들은 생존자들이 많다고 본다. 남의 땅 빼앗아 대한민국을 만들고 가짜역사 만들어 대중을 쇠뇌 시켜왔다. 그 가짜역사를 기반으로 문화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가짜 역사로 일제강점기 6.25를 만든 것은 땅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팔도를 만들고 읍, 면, 리를 만들었다. 지적도를 그렸다. 그들 마음대로 땅을 나누었다. 그것으로 등기를 만들었다. 만만한 사람들의 땅은 빼앗았다. 나중에 들통 날 것 같으니 슬쩍 수정하고 면적을 대폭 줄였다. 등기부 파일번호까지 수시로 바꾸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면적 단위 정, 단, 무, 보를 만들어 말이다. 우리는 산은 임야 몇 평이라고 듣고 살았다.
그들에게 양심을 촉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