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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백백프로젝트

[100-083] 서울의 전차? 104.

100-083

 

서울의 전차? 104.

 

PART 03 : 70년간 운행의 종료 : 한계가 드러난 전차 교통 : 전차의 수입(輸入) : 버스 노선의 확대 버스 노선의 확대 : 서울특별시의 시내버스 위키 백과를 보자. 1921년 처음으로 왕십리와 뚝섬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이 개통되었다고 한다. 출처가 纛島(독도)往十里(왕십리) 자동차 운뎐개시” (363). 동아일보. 1921816. 3지나간 이십삼일부터 왕십리선 뎐차 종뎜에셔 ⊠⊠⊠섬으로 가는 자도차 운뎐을 개시하얏는대 매일 아츰 여덜시부터 시작하야 밤 열한 시반⊠⊠지 승ㄱㄱ이 잇는대로 운뎐을 한다더라이다. 언제나 출처는 신문이이다. 뚝섬하고 왕십리에 뭐가 있어서 1921년에 버스를 개통했을까. 뚝섬이 아니고 동아일보 기사 제목으로는 纛島(독도)이다. 뚝섬 독도가 동해바다로 옮겨갔나?

1949817개의 버스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아 273대의 버스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집성촌에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으로 보인다. 필자의 큰오빠는 1969년에 부산으로 갔다고 한다. 어제 도림천에서 만난 분은 1969년에 국민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서울로 왔다고 한다. 1969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땅 끝 마을에서 서울까지 무엇을 타고 왔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이 났다. 땅 끝 마을에서 서울까지 포장되지 않는 신작로로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십대 중반도 안된 아이가 올라 왔다고 한다. 돈을 알아서 올라왔나?

필자는 국민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간 것은 부산에 큰오빠와 셋째오빠가 있었다. 언니랑 같이 갔다. 인천은 작은집 동갑내기가 중학교 졸업하고 인천으로 공장 간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갔다. 지도 혼자 가기 그러니 필자랑 같이 가자고 한 것 같다. 필자는 좋다고 따라갔다. 서울은 둘째 오빠가 있어서 왔다. 국민 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혼자 왔을까? 그분과 이야기를 하면 수상하긴 하다. 1980년대 초반에 폭력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서대문구 영천동 101번지 주소는 정확하게 말한다. 주소는 외운 것 같았다. 응암동에 즉결 심판하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서대문 형무소도 응암동에 즉결 심판소도 없었다.

1966년 서울시는 교통난을 완화하기 위해서 전차를 철거하고 버스를 운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고 한다. 연보를 보면 1977년에 토큰 제를 실시했다고 한다. 토큰은 1984년에는 없었다. 1984년에 버스요금 선불제도를 시행했다고 한다. 1984년에 서울에는 안내양이 요금을 받았다. 후불이다. 내릴 때 돈을 냈다. 토큰 생기고 선불 제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차장 없어지고 토큰으로 차를 탈 때 운전사 옆에 붙어 있는 통에 넣었다.1996년에 버스 카드제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좀 빠른 것 같다. 회수권 쓰던 때 아닌가 싶다. 1999년에 토큰제가 폐지되고 버스카드로 토큰 제를 대체했다고 한다. 회수권 제는 언급이 없다.

2004년에 71일에 거리 비례제 요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리송하다. 2007년 지선버스, 간선버스 운환버스가 생기면서 환승제도가 생겨 거리 비례제 요금이 생긴 것 같은데 2004년이라고 한다. 2004년에 시작해서 준비기간을 거쳐 2007년에 시행을 한 것인가? 2004년부터 시행을 한 것인가? 알아먹을 수가 없다. 필자 기억은 한번 버스 요금을 내고 타면 종점에서 돌아 종점까지 와도 같은 요금이었다가 환승제도가 생기고 카드 결제를 하면서 타면서 찍고 내릴 때 찍으면서 알아서 요금 계산을 해서 빼갔다. 내릴 때 깜박하고 안찍고 내리면 다음날 버스를 타면 요금이 두 배로 빠져 나간 걸로 기억한다. 202411월부터 24일부터 새벽에 자율주행버스를 운행한다고 한다.

서울에 전차는 없었다. 전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