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00일 100장

[100-21]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어제자 신문에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윤정부의 ‘강제성’은 빠진 채 동의, 조선인 동원 강제성 언급 전혀 없어, 박근혜 정부 ‘군함도’보다 더 후퇴, 외교부 “이미 2015년 정리된 것”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는 기사이다.(한겨레)
   사도광산을 구글어쓰로 살펴보았다. 사도광산도 섬이다. 울릉도 보다 10배정도 크며, 제주도의 절반 정도의 크기이다. 일본에서는 본토 4개 섬을 포함해 6번째로 큰 섬이며 본토에 속한 섬 중에는 가장 크다고 한다.
   사도광산이 한때 금광으로 이름이 높은 지역이었으며, 사실상 일본 최대의 금광이다. 에도 막부시대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금고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도광산은 1601~1989년까지 일본에서 다른 탄광보다 채굴시간과 채굴기간이 가장 길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시설이었고,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와 강제노역을 하였는데 최소 1,141명의 조선인들이 노역했다는 일본 정부의 문서가 공개된 바 있다고 한다.
 
   사도광산 사진을 살펴보자. 국민일보 2014년 7월 26일자 기사에 실린 사진은 두 갈래의 길이 보인다. 한쪽은 시멘트인지 콘크리트인지로 바닥을 깔았다 한쪽은 레일 선이 깔려 있고 다른 쪽은 레일이 없다. 2022년 KBS 기사에는 바닥과 벽 천정이 다 콘크리트로 처리된 걸로 보인다. 물이 줄줄 새고 있다. 입구가 안 보인다. 한겨레 어제 자 기사에 보면 입구 같은데 한쪽은 무너진 것 같고 한족은 튼튼한 콘크리트로 보인다.
   국제신문 기사는 선광장이라고 콘크리트로 둥그렇게 만들었고 다리도 튼튼하게 만들어 받쳤다. 꼭 우주선 모양 같다. 용화광산하고 다른 모양이다. 공중에 왜 떴을까?
   중앙일보 사진의 선광장 사진은 다르다. 3층으로 봐야 하나 그리고 1층 2층은 네모난 구멍들이 있고 3층에는 원형 통 모양이 5개 있다. 3층 왼쪽으로 다리가 많은 시설이 있다. 선광장 설계도를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은 없다. 우리나라 영양의 용화광산 선광장은 삼각형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는데 여기는 직선 같아 보인다.
   1601년 전에 섬에 금이 매장된 것을 어떻게 알고 광산을 만들었을까? 그때 당시 일본에 사람이 살기나 했나 싶은데. 금광이 그것도 섬에 있었다고 한다. 시멘트는 1824년에 발명하였다. 콘크리트는 1867년이 발견했고, 콘크리트가 상용화되기까지 몇 십 년이 걸린 걸로 보인다. 1876년 보다 200여년 앞서 일본이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발견하여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1601년에 무거운 금을 실어 나를 튼튼한 배가 있었다는 말인가. 1960년대까지 일본이 탱크도 못 만들었다는 댓글을 보았었다. 여기저기 물어 보다가 한군데서 알아보고 연락을 준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현실적으로 일제강점기는 없었다. 당연히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도 없었다. 영화를 찍은 것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해 군대가 해산되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 일본이 탱크도 못 만들었다는 댓글은 매우 신뢰성이 높다.

니가카현 북서쪽 섬
사도섬(사광산)
갱안
선광장
선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