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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장

100-22 마크 리퍼드 미국 전대사

마크 리퍼드 미국 전대사
 
   마크 리퍼드는 1973년생이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주한미국 대사로 2014~2017년까지 재직하였다. 2022년 2월부터 삼성전자 북미 대외협력팀장 부사장이다.(팀장 부사장?)
   2015년 3월 5일 세종문화회원에서 개최된 민족화해협력법국민대회 조찬 행사에서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 체결 등을 주장하던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 대표 김기종에게 피습을 당했다.
   
   김기종은 1959년 생이다. 1978년 금호고등학교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재수를 거듭하다가 1980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84년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통일정책대학원에서 남한사회 통일 문화운동을 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1982년? 사법시험 응시를 포기하고 운동권에 가담했으며, 주로 재야 문화운동에 주력했다고 한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의 외래교수를 지냈다. ‘전통예술의 이해’라는 교양과목 1강좌 강의했다. 1999년 1월 북한에 갔다가 돌아왔다.
   
   2007년에 청와대 앞에서 우리마당 피습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다. 분신자살을 시도 했다 이때 전신 20%에 3도 화상을 입는 등 심하게 다쳤으며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 가까스로 소생했다고 알려졌다.(나무위키)
   우리마당 피습사건은 1988년 8월 17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역 부근에 있던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해 단체 회원인 대학생들을 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라고 한다. 당시 우리마당 대표인 김기종은 28살이라고 한다.(조선일보 김창균 사회부장)
   
  3도 화상은 피부의 전층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화상을 말한다. 의사들은 3도 화상을 가장 심각한 사태로 판단하고 자연 치유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부터 피부는 흰색이거나 갈색이며, 감각이 없다. 해당 부위를 눌러도 하얗게 변하지 않는다. 신경까지 손상되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3-1도 화상을 입으면 사망을 피하기 어렵다.(나무위키)
   
   김기종은 사망을 피하기 어려운 3도 화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여러 사진을 보면 손이 불에 녹아 기형으로 보였다. 김기종이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면도칼로 알려졌으나 이후 25m 길이의 과도로 밝혀졌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간신이 목숨을 건졌고 장애인이 된 김기종이 과도와 커터칼로 미국 해군 정보 장교 출신 건장한 리퍼드 대사를 피습해서 피철벅이 되었다고 한다.
   
   리퍼드 대사 피습 당시 사진들을 보면 얼굴에 칼을 맞았고, 왼쪽 뺨을 감싸고 있고 오른손에 피가 낭자하다. 와이셔츠 넥타이 등에도 피가 마구 튀었다. 당시 국회의원 중 한사람은 김기종을 눕혀 놓고 발로 밟은 사진도 있다.
 
   3도 화상을 입은 김기종은 피습범이 되어 발로 밟히고 체포되어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 수갑됐다.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법무부도 다 한패다. 아니면 그들은 장님이다. 김기종의 상태는 안보이고 “얘가 리퍼드 칼로 찔렀어” 하니까 “어! 그래 너 유죄” 하고 감옥에 넣은 것이다.
   
   김기종이 사진을 찍은 많은 기자들도 장님이다. 신문 방송을 본 사람들도 장님이다. 사진을 보면 손가락이 정상이 아니다. 장애인이다. 지체 장애인 손이다.

김기종 손가락도 정상이 아니고 다리도 기브스를 했다.
리퍼드 대사 오른손팔에 피가 흐르고 피는 왼뺨에서 나는지 왼뺨을 지혈하고 있다.
김기종이 리퍼드 대사 피습때 사용했다는 과도와 커터칼
김기종 손을 보자 손이 기형이고 깨끗하다. 피가 한방울도 안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