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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장

100-3 서봉총

서봉총

 

서봉총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이다. 일제강점에 발굴되었는데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가 참여하여 봉황 장식의 금관과 목걸이, 귀걸이 등의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고이즈미 小泉顯夫등이 발굴하였다. 이 고분 발굴에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가 참가한 것을 기념하여, 스웨덴의 한자명인 ()’자와 이 고분 출토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자를 따서 서봉총이라 이름 지었다.”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일부이다. 우리나라 생활상을 보면 고분은 있을 수 없다. 금관이 나왔다는 것도 믿기 힘들다. 우리는 돈이 없었던 나라였다. 돈이 없으니 당연히 보석도 없었다. 소박하게 고만고만하게 집성촌을 이루며 서로 돕고 살아왔다.

서대문 형무소가 없었다. 1908년에 서대문 형무소를 현재 서대문구 현저동에 서대문형무소를 지었고, 몇 번의 이름을 변경한 후,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1908년에 형무소를 지어서 19193.1운동때 만세를 부른 사람들을 잡아다가 잔인하게 고문하여 죽였다고 한다. 없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말이다. 추후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192667일자 매일신보에 미국, 일본을 거쳐 가을에 조선을 온다는 기사가 있다. 지금처럼 전화가 발달하고 특파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3개월 전에 조선에 온다는 정보를 어떻게 알고 매일신보는 기사를 썼을까, 황태자의 이동은 보안사항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미국, 일본을 거쳐 조선, 지나 중국과 인도를 거쳐 본국으로는 육로로 돌아갔다는 말인가. 상상이 안가는 경로이다.

스웨덴에서 언제 출발하여 미국에 도착했고 미국에 얼마나 체류했으며, 언제 일본에 도착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조선은 1010일에 도착했다고 한다. 1013일에 경주 발굴 현장에 왔다고 한다. 금관 등 장신구를 발굴했다고 한다.

그런데 192666일에 스웨덴 황자는 스웨덴 올가에 있다는 사진이 있다. 6일에 올가에 있는 사진, 7일 매일신보로 가을에 조선에 온다는 기사가 있다. 아이러니 하다.

또한 식민지가 이름이 조선이라는 것도 이해불가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개명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대한제국 전신인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는 것이 말이다.

여기까지로 봐서는 구스타프 아돌프 6세 스웨덴 황자가 스웨덴에서 미국, 일본을 거쳐 조선에 왔다는 것은 신뢰성이 매우 떨어진다.

서봉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