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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에게 에곤 실레를 살펴보자.
에곤 레오 아돌프 루트비히 실레는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툴론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10월 31일 28세의 나이로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빈에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뤄보겠다. 스승이 앞서 다룬 구스타프 클림트이다. 학력은 빈 미술 아카데미이다. 가족이 있다. 아버지 아돌프 실레, 어머니, 누나 2명과 여동생 1명 그리고 배우자 에디트 실레(1915~1918년)이다. 직업은 화가, 데생가, 디자이너, 사진가이다. 그 시절에 사진기가 있었을까? 있다고 해도 흔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집이 부자였나? 오스트리아 화가이다.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도나우강 변 툴른에서 출생하였다. 도나우강의 잔물결이라는 곡이 생각이 난다. 오스트리아 빈에 도나우강이 있었구나! 그 강을 배경으로 곡을 작곡을 했나 보다.
에곤 실레는 철도청 고급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2살 경부터 색연필과 종이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892년에 색연필이 있었다고 한다. 크레용도 아니고 색연필이 있었다고 한다. 철도 미니어처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철도 미니어처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에곤 실레가 열성적으로 그림을 그리자 스케치북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그림 그린다고 스케치북을 찢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스케치 북도 있었다고 한다.
에곤 실레의 아버지는 15살 때 결혼 전부터 앓았던 매독으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결혼전부터 성병이 걸렸었는데 애를 4명이나 낳았다고 한다. 철도 공무원을 했다고 한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관심이 없었다가 아버지가 죽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1살에 학교를 옮겼는데 이상하고 수줍음 많은 아이로 여겨졌다고 한다. 에곤 실레 사진에는 아주 개구쟁이 같이 생겼다. 수줍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15살에 학교 창문 밖 풍경을 배우지도 않고 잘 그렸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유급을 당했다고 한다. 에곤 실레의 대리자인 어머니와 삼촌을 설득하여 16살인 1906년에 빈으로 상경하여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한다.
스승이 구스타프 클림트면 클림트에서 배워야 하는데 클림트와는 아무런 이야기 없다. 1918년 봄에 연 전시회에서 에론 실레의 작품이 큰 주목을 받게 되면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뒤를 이을 신예 작가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그 해 10월 28일에 사망했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는 사제지간이 아니다. 그럼 스승이 아니다. 에곤 실레도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음에도 자신이 죽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길 수 없어서 사진으로 남겼다고 한다.
에곤 실레 작품은 클림트와 유사하다. 색감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들이 퇴폐적이다. 28살에 죽었는데 그림들이 많다. 그것도 야한 퇴폐적인 그림들이다. 나무위키 사진에는 그런 그림 그릴 사람으로는 안 보인다. 완전 개구쟁이로 보이는데 말이다. 보기가 민망하다. 포르노 그림들이다. 삼류 포르노영화가 생각난다.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들은 색감이 동화적인 느낌이 있다. 에곤 실레의 그림들은 퇴폐적이다. 반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