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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장

[100-38] 일제강점기는 없었다. 고로 광복절도 없다.

100-38

 

일제강점기는 없었다. 고로 광복절도 없다.

 

광복절(光復節)은 영예롭게 회복한(光復) 날이란 뜻이라고 한다. 1945년 수요일에 제국의 패망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날인 8월 15일을 기념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역사가 날조되었다고 보는 이유들』로 전자책을 먼저 발간하고 뒤이어 바로 『우리역사 진실찾기』 종이책을 발간을 했다. 전자책은 시길 프로그램으로 만드는데 프로그램 사용할 줄 몰라 의뢰를 해서 만들었다.

요즘 사람들이 전자책 선호하는 것 같아 전자책을 냈다. 내는 과정에서 종이책도 POD방식으로 비용 없이 출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종이책으로도 출간을 했다.

책자에는 우리나라 역사가 왜 날조되었는가의 근거로 근, 현대 사진을 실었다. 우리역사 진실찾기 책을 냈는데도 필자의 유튜브에 일제강점기가 왜 없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책은 보고 댓글을 달았는지 물어 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필자의 백일 백장의 내용들도 역사의 날조를 그동안 날조자들이 이슈로 내세웠던 것들을 반박하는 형식으로 쓰고 있다. 상식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사건들을 사진을 아무렇게나 만들어 믿으라고 한다.

서대문 형무소가 없었다. 1945년 서대문 형무소 원형사진에는 사진에 무악재가 없다. 79년도 서대문형무소 주변 사진은 형무소 자리에 공장이 있다. 그런 형태의 공장은 80년대 많았다. 고종이 11명이 넘고, 이승만은 14명이며, 한성감옥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감옥이 아니다. 이승만은 스님이다. 스님 옷을 입고 있다. 스님 일복이다 필자가 70년대 봤던 스님들 옷이다. 감옥이라는 배경 건물은 벽돌건물이다. 그 건물 또한 70년대 이후에 볼 수 있는 건물이다.

1922년 김구는 서양인이고 1938년 중국 식당에서 총 맞았다는 사진은 합성이다. 가슴에 총을 맞고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양의가 있었을까 싶은 1938년 중국에서 가슴에 총 맞고 수술도 안하고 살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가슴에 총을 맞았다면 즉사했던지 몇 시간 살 수 없다. 1949년 경교장 암살 장면도 날조이다. 총을 4방이나 맞았는데 옷이 핏자국이 다 다르다. 시체로 누워 있는 사진에는 손이 힘줄이 보인다. 살아 있는 사람이다.

광복절을 검색하니 『일제 침탈에 화난 평범했던 그들... 기록보니 ‘독립영웅’이었다.』 오늘자 기사 제목의 노컷뉴스를 보니 경상남도가 판결문 등 입증자료를 모아 역대 최대 규모 34명 발굴해 서훈을 신청했다고 한다. 「항일 운동 기록으로 입증될 형사공소사건부. 경남도청 제공」 이미지 어디서 났는지 문의를 했다. 공훈전자사료관과, 독립운동판결문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서 찾아서 발굴을 했다고 한다.

독립기념관은 1987년에 만들었다. 광복절 기념식을 취소했다고 해서 역사 날조를 인지하고 취소를 했나 했더니 아니다.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니 마니 기사가 보이 길래 역사 인식을 제대로 했다 하고 봤더니. 광복회장이 싫어서 참석 안한다는 내용이다.

꼼꼼하게 역사 날조하고 피해자, 가해자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구멍이 있었고, 필자의 눈에 띄었다. 필자가 역사 진실 찾기를 하게 된 이유이다.

일제강점기는 없었다. 고로 광복절도 없었다.

항일 운동 기록으로 입증될 형사공소사건부. 경남도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