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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전태일은 1948년 생으로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노동운동가라고 한다. 1970년 11월 13일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를 외치면서 근로기준법 전을 안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법령정보센터의 근로기준법은 1997년에 제정되었다. 근로기준법 연혁을 보면 [1997년 3월 13일 법률 제5309호, 1997년 3월 13일 제정]이다. 1970년에 근로기준법 전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1954년 4월 7일 대통령령 제899호, 1954년 4월 7일 제정]이다. 법도 없는데 시행령이 있다. 법 제정되기 43년 전에 시행령이 생겼다? 시행령이란 법률을 실제로 시행하는 데 필요한 상세한 세부 규정을 담은 것 “일반적으로 시행령은 법률의 시행을 위하여 발하는 집행명령과 법률이 특히 위임한 위임명령을 포함하며 이는 대통령의 명령이다.” “법은 국회에서 제정하고 시행령은 대통령이 하고, 시행규칙은 장관이 제정한다. 그런데 국회에서 법을 안 만들었는데 대통령이 시행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의 근로기준법시행령은 1954년에 제정해서 1962년에 일부개정을 두 번이나 했다. 1969년에는 전부 개정했다. 1975년에 일부개정, 1978년에 타법개정, 1981년에 일부개정과 타법개정을 했다. 1982년 일부개정, 1988년에 일부개정을 두 번이나 했다. 1989년에 타법개정, 1990년에 타법개정, 1993년에 일부개정, 1994년에 타법개정, 1997년에 폐지제정을 했다고 한다. 폐지 제정도 있는가?
근로기준법이 앞뒤가 안 맞는다. 법이 제정되어야 시행령을 내릴 수 있는데 법도 없는데 시행령을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국가 기관이 장난질을 치고 있다.
전태일이는 1948년 9월 28일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동 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전태일 기념관에 전태일 사진들이 있다. 전태일이 어릴 적에 찍은 가족사진도 있다. 애기가 둘인데 잘 먹어서 통통하다. 엄마와 아빠인지 두명의 성인 남자가 있다. 성인남자 두 명과 엄마 아가들 둘 다섯이 사진을 찍었다. 전태일이는 2남 2녀 중 장남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재단사였는데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한다.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가 서울로 와서 봉제공장을 차렸다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데 공장을 차렸다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데 가족사진도 찍었다. 전태일이 사진들을 보면 전태일은 가난한 집안 자녀가 아니다. 부유한 집안의 자녀다. 서울에서 살다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17세에 무일푼으로 상경해서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점에서 시다를 했다고 한다. 시다는 미싱 보조를 시다라고 한다. 재단 보조는 필자도 80년대 봉제공장을 다녔지만 재단 보조는 없다. 더욱이 작은 봉제공장은 말이다. 재단사는 월급도 쎄다. 대접받는 직업이다. 17세에 국민 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17세면 중학교 졸업할 나이 아닌가 싶다. 54년에 우리나라가 국민 학교가 생겼다고 본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는 언제 생겼는지 가늠 할 수가 없다. 오리무중이다. 그 시절에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10살 넘어서 국민 학교를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보긴 한다.
봉제공장 노동자 아버지와 광주리 행상하는 어머니, ‘가난’은 그를 운명처럼 따라 다녔다고 한다. 전태일 기념관 영상의 사진과 멘트는 불일치하다. 사진은 갑부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