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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20

[100-71] 개 세상인가? 사람 세상인가?

100-71

 

개 세상인가? 사람 세상인가?

 

요즘 공원이나 개천에 개들이 많다. 평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필자도 어린 시절 강아지를 키웠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 외갓집에 다녀오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검은 강아지라 이름이 검둥이가 되었다. 추웠는지 강아지가 부엌 아궁이에 들어 가 자고 있었는데 필자가 모르고 밥을 지으려고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안에서 깨갱했다. 언능 불을 끄고 강아지를 꺼냈다. 그 뒤로 업고 다니고 안고 다니고 동고동락을 했다.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큰오빠라는 사람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검둥이를 집 앞 감나무에 매달고 두둘겨 패서 잡았다. 필자와 여동생은 울고불고 했다. 큰오빠라는 사람이 작대기 들고 우리를 팬다고 쫓아왔다. 지금도 분노가 치민다. 검둥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었다. 검은색 개를 보면 검둥이가 생각났다. 필자도 개를 무척 이뻐하고 좋아 했다. 80년대 서울에서 아침에 출근길에 남의 집 대문 안에 예쁜 강아지가 어슬렁 거렸다. 지금 보면 포메리안 같다. 이쁘다고 인사를 했다. 털을 곧추세우고 무섭게 짖어 댔다. 그 뒤로 개 이뻐라 하는 것은 두려웠다. 무섭게 달려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천이나 공원에 개들이 많아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천에서 개들이 아무데나 똥싸고 오줌을 갈겨 댄다. 어느 날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하천에 놀러 나왔다. 엄마는 아기를 걷게 해주고 싶었나 보다.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진다. 문득 저기 어 여기 똥밭인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하천이나 공원이 개 공원이지 아이들 공원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똥밭에서 놀아야 한다. 화단과 잔디를 잘 가꾸어 놨는데 똥밭이다. 똥은 치워가지만 똥 눈 자리 닦지 않는다. 오줌은 더더욱 치우지 않는다. 개들은 오줌을 누는 자리에 다른 개들도 계속 눈다. 이제는 개도 의자에 앉아서 쉰다. 사람이 앉을 자리도 없어 졌다.

당근에 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공원에 놀러 갔는데 자기 개가 짖었더니 지나가던 사람이 자기 개를 발로 찼다고 한다. 시비가 붙어서 경찰까지 불렀는데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당근에 올린다고 한다. 필자는 너는 그럼 그 사람에게 개 짖은 거에 대해서 사과 했니라고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달지 않았다. 먼저 사과 하고 언능 자리를 피하면 되지 개 찼다고 빡빡 대들은 것 같다. 갑자기 개가 짖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놀랬나 보다. 놀래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날 때가 있다. 먼저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래도 그 사람이 화가 안 풀렸으면 언능 피하면 될 것을 지가 원인 제공을 하고 경찰까지 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잘못한 사람이 경찰을 부르고 신고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보라매공원 중앙 잔디광장은 반려견 출입을 삼가 달라는 팻말이 여러 개 있다. “반려동물은 중앙잔디광장 대신 잔디마당 및 반려견 놀이터를 이용해주기시 바랍니다.”라고 팻말은 눈에 안 보인다. 줄기차게 잔디 광장에 들어온다. 몰랐다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은 양반이다. 알았다고 하면서 안 나가고 버티는 사람, 들어와도 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화내는 사람, 강제는 아니네 하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필자는 중앙잔디 광장에 반려견 출입금지라 좋았다. 중앙잔디 광장에 개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개가 싫은 것이 아니다. 개는 아무데나 오줌똥을 싸기 때문이다. 개가 광장에 뛰어 들어오면 숫개는 광장 안에 심어 놓은 나무에 오줌부터 갈긴다. 반려견은 키우는 사람의 반려견이다. 개 안 키우는 사람에게 반려견이라고 강요하지 말길 바란다. 며칠 전에 도림천에 보니 개똥이 있다. 다음날 더 많은 똥이 있다. 필자는 스마트 불편 앱으로 신고를 했다.

암 개는 산책로에 앉아서 오줌을 눈다.
개똥을 치웁시다. 똥 눈자리도 청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