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일백장. 20

[100-80] 서울의 전차? 5.

100-80

 

서울의 전차? 5.

 

PART 1 : 전차의 도입 | 한성전기회사의 설립과 사업의 착수 : 전차가 지나가는 종로거리 이미지는 거리가 엄청 넓다. 1980년대 중반의 종로는 필자 기억에 그리 넓지 않았다. 옛 광화문 이미지도 광화문이 엄청 넓다. 광화문은 그리 넓지 않았고 길을 넓혔다. 길이 넓었다가 좁아지고 다시 넓어질까? 1980년대 단층집에서 3~4층 다가구 건물을 지을 때 그대로 짓지 않고 기존 땅에서 3평 들여 지었다. 그렇게 해서 좁은 길을 넓혔었다. 왼쪽 건물도 그 시절에 지을 수 없는 건물이다. 이 이미지들은 CG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책은 카를로 로세티라는 사람이 1904년에 썼다는 책이다. 서울에 주재했던 제3대 이탈리아 영사인 로세티가 유럽 외교관이자 지리학자로소 바라본 한양과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라고 한다. 흥교 밑을 지나가는 전차는 앞쪽은 기와집과 초가집 벽은 판자와 돌로 만들었고 아치형 굴다리가 두 개 있다. 한쪽 굴다리에 선로가 있고 전차를 그려 놨다. 아치형 다리도 그 시절 불가능한 시설이다. 의주로선은 190076일에 개통했다고 한다. 서대문정거장과 남대문 정거장 사이를 연결한 노선이라고 한다. 정거장을 연결해 화물 운송을 수월하게 하려 하였다고 한다. 이용부진으로 2-3년이 지나면서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서대문정거장과 남대문 정거장은 현대도 정거장 잇기 힘들다. 서대문정거장은 실체가 없다. 장소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남대문 동대문 만들고 서대문 만들려고 하다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서대문정거장이 경인철도의 종착역이었다고 한다. 경운궁과 외국인 거류지인 정동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남대문-홍릉 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전차 노선은 경인선의 계획으로 종착역이 인근 서대문가지로 바뀌었다고 하다. 서대문은 지금 농협 본사 자리로 이해된다. 그 곳에서는 오른쪽으로 쭈욱 가면 서울역으로 빠진다. 인천에서 수입한 물건들은 경인철도를 통해 서대문정거장까지 운송된 후 전차 궤도를 통해 도성 내로 운송되었다고 한다. 이해가 안 되는 설명이다. 인천에서 수입을 한다고 한다. 서대문하고 뭔가를 연결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아구가 맞지 않다. 서대문으로 운송해서 전차궤도를 통해 도성 내 어디로 운송되었다는 것인가? 서울의 상권은 동대문과 남대문이다.

남대문정거장 이미지는 1901년이라고 한다. 남대문 정거장에서는 단층자리 스레트 지붕에 오른쪽 큰 건물에는 굴뚝이 두 개 있다. 왼쪽 정거장 입구인지와 가운데는 자전거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희미하지만 자전거로 보인다. 영화에서 본 일본의 역 앞 자전거 정류장을 연상케 한다. 수레가 하나 길 가운데 있다. 이미지 앞은 아래로 꺼져 있고 풀이 무성하다. 또랑으로 보인다. 남대문로를 지나가는 전차 1900년이다. 가운데 전봇대가 큰 것이 서 있다. 전봇대에 걸개라고 해야 하나 보통 전봇대는 하나가 가로로 있는데 이 전봇대는 5개나 나 있다. 전차도 보이고 수레를 끄는 남자도 있다. 전봇대가 여러 개 보인다. 남대문로와 서울의 시장 이미지다. 감리교회의 한국선교에서 1910년에 찍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 갓을 쓴 남자들과 지게를 진 남자들만 바글바글 하고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이미지는 KOREA MISSION METHODIST EPISCOPAL CHURCH 글자와 조랑말을 끌고 가는 흑인 남자를 그렸다. 얼굴이 흑인이다. CG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산이 남자와 조랑말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한국선교사업과 한국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한다.

광화문이라고 한다. 뒤에 산이 너무 가까워 경복궁이 없는 구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