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일백장. 20

[100-87] 서울의 전차? 12.

100-87

 

서울의 전차? 12.

 

PART 1 : 전차의 도입 | 문명의 충격과 의식의 변화 : 근대화에 대한 적응 : 전차 이미지를 보자 1900년대 초에 들어온 개방형 일반용 전차라고 한다. 전차의 지붕과 전차 승차표에 오루도’, ‘히이로담배 광고가 개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근대 상품들이 이미 일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한다. 전차 지붕에 담배광고 간판을 붙였다는 것인가. 개방형 전차 지붕이다. 황실전용 전차부터 전차 종류가 몇 개나 되는 것인가? 전차종류가 4개이다. 전기도 없었고, 선로도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전차 종류가 다양하게 달렸다고 한다.

전차 승차표와 지갑 이미지가 있다. 1904년 한성전기회사에서 한미전회사로 바뀐 이후에 사용했던 전차표와 이를 넣고 다녔던 지갑이다. 5전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하등석의 가장 짧은 구간을 위한 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다. 80년대도 지갑이 흔치 않았다. 돈은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1904년에 승차권 지갑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시대야 카드 지갑이 따로 있지만 말이다. 배경은 현대인데 연대만 1904년이다. 재료는 어떻게 만들었을가? 작은 영수증 발급기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승차권은 American Korean Electric Ticket One 5 Ride cent/한미뎐귀회샤차타ᄂᆞᆫ표 오젼표/韓美電氣會社 乘車票 伍錢이다. 미국을 쌀미자에서 아름다울미로 바꾼 것 같은데 여기는 쌀미가 아닌 아름다울 미자를 썼다. 승차권 뒷면인지는 로이히/초연선지동샹/·/연선지동(나머지 한자는 모르겠다.)/ㅡㅁㅡ(ㅋ을 거꾸로 눕혀온 초성 글자들을 나열해 놨다.)

시공간 감각의 재편 : 전차 개통 후 사람들은 시공간의 감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전차 때문에 규칙성을 학습하였다고 한다. 먼 곳으로 이동이 편리해지면서 사람들이 도성 밖으로 쉽게 이동을 했다고 한다. 시간 절약과 이동의 자유로움으로 사람들은 늦은 밤까지 시간을 활용하였다고 한다. 1900년에는 밤 10, 1901년에는 밤 11시까지 전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고 한다. 1899년에 전차를 운행 할 정도로 전기를 생산을 했는데 90년 후에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는 전기가 들어왔다. 필자 시골은 1960년대 중반 물레방아 전기를 쓰다 1970년대 중반에 발전소 전기가 들어왔다.

1970년대 아니 1990년대 초반에도 시골은 나무를 해서 밥을 해먹고 난방을 했다. 해 넘어가면 밥을 먹고 어두워지기 전에 잠을 잤다. 19001901년에 서울은 불야성이어서 11시까지 사람들이 돌아 다녔다고 한다. 전차시간표가 또 있다. 영어로 쓰여 졌다. 1899920일이라고 한다. 자기들만 보는 암호 같다. 1899년도 전차시간표 종이가 새것이다. 잉크로 찍어낸 것처럼 종이가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다. 종이는 시간이 지나면 누래지다 갈색으로 변한다. 시간표가 무슨 암호 같다. 전자가 개통된 후 4개월 후인 18999월의 전차시간표라고 한다. 16분 간격으로 운행되었으며, 동대문차고지에서 서대문으로 갔다가 다시 동대문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총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고 하다. 그들만의 세상이다.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밤 10, 11시까지 운행하면 누가 전차를 타고 돌아 다녔으며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전차시간표의 EAST BOUND는 서대문 - 경희궁- 종로- 종묘- 동대문차고지 앞 - 동대문 - 홍등- 동대문이라고 한다. WEST BOUND는 동대문차고지 -종묘 - 종로- 경희궁 - 서대문을 운행했다고 한다. 시간표에는 EAST LOUND. 라운드가 맞는가? 바운드가 맞는가? 서울 사람들은 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차표 시간이 영어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노선이 이해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