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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 10.
PART 1 : 전차의 도입 | 문명의 충격과 의식의 변화 : 근대화에 대한 적응 : 앞에서 이어 알렌을 더 보자. 알렌은 1884년에 내한한 이래 1905년 주한미국공사에서 해임되어 본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21년간 한국에 살고 있었다. 그는 濟物浦에 별장을 지어 놓고 자주 이곳에 머물면서 서울주재 각국 外交官會議를 주재했다고 한다.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선교는 안하고 미국 공사를 지내다 해임되니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알렌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유이다.
황실문화원이 있다. 고종 사진 중에 하얀 패랭이 모자를 쓰고 상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 있다. <1897년 명성태황후 장례식 후 조선개국 505년에 촬영 된 상복차림의 고종황제어진입니다. 2018년 황태자 이원 전하께서 알렌박사후손 Ruth Zimmerman여사로부터 환수 받은 유물로 비장한 모습의 고종황제의 상복차림어진은 국내외에서 유일한 사진입니다. 출처-대한황실문화원 알렌컬렌셕> 부인이 죽었는데 남편이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그것도 왕이 말이다. 알렌 박사 후손이 어떻게 저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가 환수했을까? 필자는 알렌이나 이병도는 그 후손에 의해서 신분 세탁, 학력세탁 된 사람들이라고 본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전차 : “열차는 귀족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늦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전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양반의 하인이 요청을 해도 늑장을 부리지 않는다. 심지어 대감 자신이 한 발 전차 승강구 계단 위에 올려놓고 자기 하인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면서 전차를 떠나지 못하게 붙들려고 해도 양반을 몰라보는 이 무례한 전차는 아랑곳없이 떠나고 대감은 우두커니 길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호러스 알렌, 「조선과 조선 사람들」『조선견문기』1908년이다.
탑승안내문(塔乘案內文) 1899년 5월 1일.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소장이라고 한다. 영어로 되어 있다. 전차 탑승 시 주의사항과 요금을 적은 안내문이다. 1899년 5월 2일자 《독립신문》에도 해당 내용을 번역한 광고가 실려 있다. 여러 주의사항 중,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고 전차를 탈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띤다고 한다. 전차는 계층뿐 아니라 성별 간 이루어졌던 차별도 없애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탑승안내문이 영어로 되어 있고 그것으로 번역해서 독립신문에 광고를 냈다고 한다. 영어 안내문 종이는 A4 용지보다 길어 보인다. 전차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있었다는 말이 되는가? 그 시절에 영어 안내문이라니, 이러니 아메리카 조선을 외칠 만도 하다.
전차를 타는 여성들 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Women Riding Tram 『BURTON HOLMES TRAVELOGUES』 1908년. 쪽머리를 한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 치마가 속치마가 볼륨이 있어 보인다. 1980년대도 우리네 한복 속치마에 볼륨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복이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오면서 치마가 볼륨이 있어지고 화려해졌다. 1908년보다 개량한복이 나오던 시기에 그린 그림으로 보인다. 장옷을 뒤집어 쓴 여인도 보인다. 너무 어색해 보인다. 한복과 장옥 두루마기는 영화 사극 의상으로 출발해서 일반인에게 퍼진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처음에는 광목으로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광목은 국산이 아니다. 이미지의 오른쪽에 남자가 머리에 쓴 모자는 중국풍이나 동남아 풍으로 보인다. 옷도 반도에서 흔히 입는 옷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 전차위의 남자는 현대 옷을 입었다. 검은 바지에 흰색상의이다. 딱 현대 옷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