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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20

[100-88] 서울의 전차? 13.

100-88

 

서울의 전차? 13.

 

PART 1 : 전차의 도입 | 문명의 충격과 의식의 변화 : 시공간 감각의 재편 : 조선에 살다제이콥 로버트 무스, 1911년이라는 책이 있다. 전차가 도성 문을 드나들면서 밤마다 굳건히 닫혔던 도성문이 계속 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차가 연 대문 최근 몇 년까지 도성의 대문들은 밤이 되면 모두 닫히고 잠겼으나 요즘에는 서양 전차가 이 대문 중 세 대문들을 통해 드나든다. 지난 5세기 이상 밤마다 닫혔던 이 육중한 문들이 전차선 때문에 닫히지 못하게 된 것이다.”라고 한다. 5세기 동안 도성안 사람들은 무엇으로 밥을 해먹고 난방을 했는지 궁금하다. 성안으로 나무를 해서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들이 즐비했다면 그 광경을 서양인들이 기록 안했을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경복궁 근처 북촌과 서촌의 기와집 한옥의 난방 시설이 필자는 궁금하다. 아궁이었는지 보일러였는지 말이다.

월섬 회중시계 광고지와 회중시계 20세기 초 이다. 월섬사에서 제조된 월섬 회중시계 광고지와 회중시계라고 한다. 광고지 내용이 영어로 되어 있다. 20세기 초 조선 사람들은 영어를 썼나 보다. 모델은 서양 사람으로 보인다. 모자는 갓 비슷하지만 갓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옷은 두루마기 같은데 다르다. 바지에 치마를 입고 두루마기 비슷한 것을 입고 허리 위 가슴께로 끈을 묶은 것으로 보인다. 신발도 우리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회중시계가 언제 이 땅에 들어왔을까? 윤봉길이 거사 전에 김구에게 비싼 회중시계를 넘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시계는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의 시계는 2원 짜리이니 저와 바꾸시지요. 저는 이제 시계를 한 시간 밖에 쓰지 못합니다.” 하면서 말이다. 회중시계 광고용 스토리인가? 1922년 김구도 서양인 얼굴이다.

한성 전기등 개설 예식 초대장 및 상등석 전차표 1901년을 보자.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소장이라고 한다. 필자가 본 전차 이미지로는 한 칸 전차고 작은데 상등석이 있었다고 한다. 1900410일 종로에 3개의 전기 등이 세워졌고, 19016월에 600등까지 보급되어 이를 기념하는 전등 개설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날 밤 11시부터 전차 선로 주위의 모든 가로등이 점화되었다고 한다. 11시에 가로등을 점화되었다고 한다. 11시면 7-80년대 서울 사람들도 잠을 잘 때로 보이는데 말이다. 초대장은 영어와 한자로 되어 있다. 두 개가 붙었는지 붙여서 사진을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한자를 세로로 썼다. 아래아 한글 세로쓰기로 쓴 것 같다. 영어로 된 초록색 표 딱지를 붙여 놨다. 1901년에 존재 불가능한 종이다. 점선으로 떼기 쉽게 되어 있어 한쪽은 떼어낸 것으로 보인다. 고속버스 승차권처럼 말이다. 영어로 스템프를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알아보기 힘들다.

야간에 가로등이 켜진 한성의 모습 이미지를 보자. 한국풍속인물사적명승사진첩대한제국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다. 대한제국에서 한국풍속인물사적명승사진첩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서관 소장 책을 보면 종이가 조금 바래긴 했지만 100년 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가로등이 밝혀져 밤에도 환한 종로 거리의 모습이라고 한다. 개통 초기 저녁 6시 반 정도까지 운행했던 전차는 가로등이 점화되면서 밤 11시까지 운행되었다고 한다. 사진은 가로등이 달보다 더 크게 환하다. 가로등 불빛만 밝고 주변은 어둡다. 이 사진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나 난감하다. 가로등에 전차가 안보일 정도이다. 집 처마 밑에 등불인지도 밝혀져 있다. 인력거인지가 늘어서 있다. 전차가 다니는데 사람은 한명도 안 보인다. 빈차로 밤 11시까지 다녔나보다.

야간 가로등이 켜진 한성으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