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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과 토기는 사실인가?
고분은 고대 무덤이라고 한다. 고대 무덤에는 석실(石室) · 점토곽(粘土槨) 등을 쌓고 관은 부장품과 함께 넣은 다음 흙으로 엎어서 봉분을 한 것이다. 형태상으로 보아 전방후원분 · 전방 방분 · 상원하방분 · 방분 · 쌍방중원분 · 원분 따위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분은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의성에 조문국의 고분이 있다고 한다. 고려, 조선도 아닌 그 전시대에 고분이라니. 그것도 대형고분이다. 석관묘와 석곽묘도 있다. 땅을 파서 돌로 관을 만들거나 곽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무슨 장비로 땅을 넓게 팠으며 돌은 어디서 뭘 로 날라다 돌관이나 돌곽을 만들었을까. 그 시절 사람들이 그렇게 할 일이 없었을까? 70년대만 해도 가난한 집은 어린아이까지도 일을 했다. 우리나라에 범죄가 생긴 것은 서양문물이 들어와서 이다. 소장수 하는 사람은 시간이 많다 그러니 동네를 돌아다니며 못된 짓을 했다. 또 시간이 널널하니 구판장에 모여 윷놀이를 하며 술을 마셔댔다.
고분 발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지표조사이고, 두 번째는 시굴 조사, 세 번째는 발굴조사이다. 지표조사는 그냥 땅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시굴조사는 간격을 두고 땅을 조금 파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 파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무덤을 발굴 할 때는 진짜 무덤인지는 모르겠지만 십자모양으로 파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파들어 가면 뭐가 나온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필자는 시골에서 살았다. 땅 파면 돌과 흙뿐이다. 땅은 흙이니까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은 돌 뿐이다. 사금파리가 나왔다는 것은 우리나라 생활상 산에 들에 사금파리가 많다. 항아리와 옹기그릇을 많이 썼다. 또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정식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항아리에 넣어 동네 어귀 아무데나 버렸다. 쓰레기도 누구 한 사람이 어느 장소에 버리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 버리기 시작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누가 먼저 한 곳에 버리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장소에 갖다 버린다. 그리고는 항아리 위에 돌을 대충 얹어 놓는다. 밭에 일하러 가면 새참을 내간다. 그릇이 사기니 깨지기도 한다. 그럼 휙 던져 버린다. 그런 것들이 산에 많이 보이면 그것을 유물이라고 한다.
석곽, 석관 무덤을 쓰고 거기에 부장품을 넣었다 치자. 그것들이 분해 안되고 영원히 그대로 있다는 것인가. 철이 가장 먼저 분해된다. 1500년 전 무덤에서 덩이쇠가 나왔다고 하는 것은 너무 허무맹랑하다. 기원전 청동기 시대가 있었고 그 시대에 만든 청동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동은 분해 안되나. 필자는 사람의 뼈까지 썩어 사라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철, 동, 종이 등이 분해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실험해 보고 싶다.
무덤에 부장품으로 토기와 철, 금관, 동관 등을 넣었다고 한다. 토기를 불에 구웠다고 하지만 그것도 분해된다. 박물관에 소장된 토기들 1500년 전에 만들 수 없다. 진흙으로 만들어 살짝 그을려서 전시해 놓은 것 같다. 금은 없다. 납에 금색 물을 들여 금이라고 한다. 그 시절에 납에 금을 물들이는 기술 즉 연금술이 있었다는 것인가? 없었다고 본다.
빗살무늬 토기는 그릇으로 쓸 수 없어 보인다. 현대에 황토 흙으로 만들어 말린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 토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억지다. 무늬로 봐서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