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애전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은애는 성이 김이요, 강진현 탑동리의 양가집 딸이었다.
이 마을에는 안씨 성을 가진 성미가 고약한 할멈이 살고 있었다. 할멈은 기생이었다가 늙은, 말하자면 기생퇴물이었다. 마음씨가 험악하고 입을 되는대로 지껄이고 다녔다. 게다가 온몸에 옴이 퍼져 늘 가려워서 괴로워했다. 이런 형편이니 울화통이 터진다거나 신세 한탄을 하게 되면 할멈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 말이 없었다.
할멈은 평소 은애네 집에 드나들면서 쌀이나 콩, 소금, 메주 같은 것을 자주 꿔다 먹었는데, 때로는 은애의 어머니가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이때마다 할멈은 앙큼스런 마음에 불이 붙었고, 자기의 몸을 온통 못살게 구는 질병에서 오는 화풀이가 더하여 기회만 있으면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
같은 마음에 최정련이라는 아이가 살았다.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인데, 그 할멈의 시누이의 손자였다. 나이는 십사, 오 세쯤 되는 곱상한 선머슴애였다.
할멈은 이 아이를 꾀어 시험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정련에게 남녀의 음탕한 정욕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준 다음, 슬그머니 운을 떼었다.
“저 은애 같은 처녀에게 장가들면 어떻겠느냐?”
이 말에 정련은 씽긋이 웃으면서,
“은애라면 아름답고 근사하지요, 어찌 행복하지 않겠어요?”
라고 하였다.
안씨 할멈은
“그럼 됐다. 너는 그저 돌아다니면서 은애하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떠들고만 다녀라.
내 반드시 일을 성사시켜 주마.”
라고 꾀었다.
이 말에 정련은
“그러지요.”
라고 말했다.
다시 할멈은,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온몸에 옴이 올라서 죽을 지경이다. 의원이 가려운 데 쓰는 약은 비싸다고 하더라. 만일 이 일이 성사되면 네가 이 약값을 대겠느냐?”
라고 하였다.
이에 정련은
“어찌 말씀대로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라며 할멈의 꾀에 넘어갔다.
며칠이 지난 뒤, 안씨 할멈은 늙은 영감이 밖에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글쎄, 은애가 정련이한테 반해서 나한테 중매를 부탁하지 않았겠소? 그래서 내가 정련이 녀석을 생각해서 우리 집에서 만나게 해 주었지. 그런데 뜻밖에 정련의 할머니에게 들켜서 은애는 그만 담을 뛰어넘어 달아났지 뭐예요.”
영감은 이 말을 듣고 어림없는 소리라는 듯 할멈을 나무랐다.
“정련의 집은 보잘것없고, 은애는 양반집 딸이 아닌가? 행여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도 마오.”
그러나 소문이란 빨라서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은애는 시집갈 길이 막혀 버렸다. 할멈은 우선 앙갚음을 한 셈이 되었다.
은애는 전전긍긍하던 끝에 어떤 마을의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그 총각은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아는 김양준이란 젊은이였다.
그들은 혼인하고 살림을 차렸지만, 나쁜 소문은 잇따른 모함과 더불어 더욱더 번져 나갔다. 나중에는 차마 들을 수 없는 별별 소문이 다 퍼졌다.
마침내 기유년 윤오월 스무닷새 날에 안씨 할멈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처음에 정련에게 은애와 중매해 주기로 약속하고, 약값을 타 내려고 했는데, 은애 그 년이 갑자기 다른 데로 시집을 가지 않았겠는가. 정련이 녀석이 약속과 다르다고 약값을 주지 않으니, 내 병이 더욱 위중하게 되었구나! 정말 은애 그 년은 내 원수다.”
이 말을 들은 동내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눈을 껌뻑거리면서,
“원, 저런 고약한 일이 다 있나?”
라고 하면서, 혹시 엉뚱한 소문이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말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안씨 할멈은 할멈대로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소문을 퍼뜨렸다.
은애는 천성이 모질고 독한 여자였다. 안씨 할멈의 앙갚음으로 2 년 동안 억울한 욕을 당하게 되자, 부끄럽고 원통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여우 같은 안씨 할멈을 어떻게 요절을낼까?”
분한 생각대로하면, 안씨 할멈의 살점을 한 점씩 오려 내어 원수를 갚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안씨 할멈은 새로운 소문을 떠벌리고 다녔다. 마침내 은애는 할멈을 해할 결심을 했다.
마침 온 가족이 밖에 나가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웃에 사는 안씨 할멈도 집에 혼자 있었다. 은애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초저녁이 되자 은애는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치맛자락을 꽂고 나는 듯이 집을 나서서, 곧장 안씨 할멈의 집 침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외로운 등불이 가물가물 타오르는 가운데, 할멈은 잠자리로 들어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웃옷을 다 벗고 치마만 두른 채 다 시들어 버린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애는 부엌칼을 비껴들고 할멈을 노려보았다. 모든 눈썹이 곤두서 있었다.
“어제 모함은 그 전보다도 더욱 심하더군. 네 년에게 분을 풀어야겠으니 이 칼을 받아라!”
그러자 할멈은 빤히 올려다보면서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흥, 이렇게 가늘고 약해 빠진 것이 무얼 하겠다는 것이냐? 찌르고 싶으면 찔러봐라!”
할멈의 말은 은애의 분노를 머리카락까지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래, 내가 못할 줄 아느냐?”
은애는 크게 소리지르며 부엌칼을 옆으로 휘둘려 재빨리 할멈의 왼쪽 목덜미를 찔렀다. 그러자 할멈은 급히 칼을 쥔 은애의 손목을 잡았다. 은애는 잡힌 속목을 빼내며, 다시 할멈의 오른쪽 목 언저리를 찔렀다. 할멈은 끽 소리를 지르며, 한쪽을 쓰러졌다.
은애는 다시 할멈의 어깨와 젖가슴 위, 어깻죽지, 겨드랑이, 팔을 찌르고, 다시 팔꿈치, 가랑이, 갈빗대, 목덜미, 젖가슴 등 주로 왼쪽을 찔렀다. 그리고 나중에는 오른쪽 갈비와 등을 계속해서 찔렀다. 모두 열여덟 군데를 찔렀고, 한 번씩 찌를 때마다 한 번찍 꾸짖었다. 이렇게 마구 칼로 찌른 뒤, 칼에 묻은 피도 씻을 사이 없이 이번에는 정련의 집으로 내달렸다. 내친 김에 마저 분풀이를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정련이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던지, 은애는 길에서 정련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미가 울며불며 말리는 바람에 은애는 어지간히 분이 풀려 집으로 돌아섰다.
마을의 이장이 관가로 달려가서 방년 18 세의 은애가 저지른 사건을 고발하였다.
이에 현감 박재순은 위의를 갖추고 마을로 와서 현장을 살피고 할멈의 시체도 검사했다. 한 사람의 소행이라고 하기에는 믿기가 어려웠다.
은애는 관가에 잡혀 오고, 이어서 문초가 시작되었다.
“너는 왜 할멈을 찔렀느냐? 게다가 할멈은 건강한 부인이요. 너는 약한 계집아이어늘 칼질을 한 것을 보니, 흉악스럽기 짝이 없다. 혼자서 저지른 일이라고 볼 수 없으니, 너는 숨김없이 바로 고하여라.”
주위에는 사나운 기세의 나졸들이 둘러서 있고, 갖은 형틀이 즐비하였다.
옥사에 관계된 사람들은 제 얼굴이 아니었다. 은애는 칼을 쓰고, 손에는 수갑, 다리에는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연약한 몸뚱이는 무거운 사슬에 얽혀 기운 없이 축 늘어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없었다.
은애는 또렷또렷한 말소리로 말했다.
“아아, 원님께선 저의 부모님과 같습니다. 죄인의 말씀을 들어주옵소서, 규방의 처녀가 무고를 입을라치면, 비록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 할지라도 더럽혀진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할멈은 본시 한낱 기생의 몸으로 규방의 처녀를 모함하였으니, 고금을 통하여 천하에 이룰 수가 있습니까? 죄인이 할멈을 칼로 찌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이다. 이 몸이 비록 세상 물정에 어두운 계집아이이기는 하오나, 제가 어제 할멈을 죽였으므로 오늘 이 몸이 죽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할멈은 이미 죽었고, 남을 모함한 죄를 물을 곳이 없어졌사옵니다. 원컨대 관가에서는 정련을 때려 죽여 주옵소서, 이 몸이 홀로 모함을 입어 원수를 갚은 일이니, 또 누가 이 몸을 도와서 이런 어려운 흉사를 도모하겠습니까?”
현감은 오랫동안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은애가 노파를 죽일 때 입었던 옷을 감정했다. 흰 모시 적삼과 푸른 치마가 피로 범벅이 되어 빛깔조차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감은 피로 물든 옷을 보고 모골이 송연하면서도 대견한 감동을 느꼈다. 마음속으로는 놓아주고도 싶었으나 나라에는 국법이 있는 법이었다.
현감은 생각 끝에 대강 조서를 꾸며 관찰사에게 올렸다. 관찰사 윤행원 역시 사건이 사건인 만큼 추관에게 일러 판결을 늦추고 계속 공모자를 가려내도록 했다. 아홉 번이나 심문을 거듭하였으나, 죄인의 진술은 시종일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다. 최정련은 나이가 어려 할멈에게 속임을 당한 것으로 보고 죄를 묻지 않았다.
경술년 여름에 나라에 큰 경사가 있었다. 은애의 옥사가 있은 다음 해였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으면 죄인을 특사하는 것은 예나 오늘이나 다르지 않다. 정조 임금은 사형수들의 죄상과 기록을 올리게 하였다.
관찰사 윤시동이 이 옥사를 기록한 문서를 올렸는데. 그 기록의 글귀가 제법 부드러웠다. 임금께서는 이 기록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살려 주고 싶었으나,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형조에 사건을 돌리고 여러 대신들이 의논하여 보고하도록 했다.
대신 채제공이 아뢰기를,
“은애가 원한을 갚은 이 사건은 비록 마음속에 쌓인 통분한 마음을 선분한 것이기는 하오나, 그 죄가 살인이라는 데 이르러서는 신도 감히 용서를 청할 수가 없나이다.”
라고 하니, 임금께서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렸다.
“정조를 지닌 여자가 음란하다는 모함을 입었다면, 이는 천하의 지극한 원한이 아닐 수 없다. 대체로 저 은애와 같이 정조를 지킨 여자가 한 번 죽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스스로 죽기만 한다면 자기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굳이 그 할멈의 살을 도려내어, 고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더렵혀진 사실이 없음을 입증하려 했다. 만일 은애가 열국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자취는 비록 다르다고 할지라도, 저 섭앵(聶罌 한나라 때의 섭정의 누이)과 무엇이 다르랴? 사관이 어찌 그의 전기를 쓰지 않겠는가.
옛날 해서에 한 처녀 하나가 살인을 한 일이 있었다. 이번 옥사와 비슷했다. 그때 감사는 놓아주기를 청하였고, 선왕께서는 그 말을 받아들여 표창을 하였다. 그 처녀가 옥에서 나오자 중매장이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천금을 들고 와서 다투어, 마침내 양반의 아내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미담으로 전해 내려온다. 게다가 은애는 원한을 참아가면서 출가를 하였으나, 모함이 여전히 그치지를 않아서 급기야 원한을 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아녀자로서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겠으냐. 은애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풍속과 인심에 대한 교화를 펼 것인가. 그러므로 그녀를 용서하고자 하노라.
전자에 장흥의 신여척을 놓아준 것도 역시 인륜의 상도를 높이고 기개와 절의를 중하게 보았던 까닭이었다. 이제 은애를 사면하는 것도 이 같은 뜻에서 나온 것이니. 은애와 여척에 관한 두 옥사를 문서화하여 호남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라.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련다.”
신여척의 사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여척에게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인 김순창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순창은 아우 순남을 지켜 자기 집을 보라 하고는 아내와 둘이서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돌아왔다. 그의 아내는 밭에서 돌아와 밀을 되로 되어 보고는 두 되가 축이 난다고 투덜거렸다.
“시동생이 집에 있었는데 밀이 없어졌으니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
순창은 곧 아우 순남을 꾸짖었다.
“내 집을 보아 줍네 하고, 내 양식을 훔쳤으니 도둑이 아니고 무엇이냐. 어서 바른 대로 일러라!”
순남은 병이 들어 누워 있다가 이 말을 듣고는 원통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형제 간에 밀 두 되를 가지고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순남은 설움이 복받쳐서 흐느껴 울었다.
순창은 밉살스럽다는 듯이 눈을 흘기다가 말하기를.
“도둑도 후회하고 운다더냐!”
하고는 방앗공이로 아우의 뒤통수를 때렸다. 순남은 더욱 죽일 지경이 되었다.
이웃 사람들은 이 실랑이를 듣고 모여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순창을 괘씸하게 여기면서도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오직 전후담이란 사람이 순창을 좋게 타일렀다.
“옛말에 곡식 한 말도 찣어서 나누어 먹는다고 하였는데. 밀 두 되가 무엇이 대단해서 형제가 서로 용서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도 순창은 여전히 욕지거리를 계속 했다.
전후담은 집으로 돌아와 분개한 어조로 이웃에 하는 신여척에세 이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신여척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팔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창이란 놈은 사람의 자식이 아니다.”
신여척은 곧장 순창의 집으로 달라가서 순창의 상투를 틀어잡았다.
“밀 됫박이 무엇이 그리 아까워서 형제끼리 싸운단 말이냐? 부모가 형제를 낳을 땐 서로 아끼며 사랑하길 바랐지, 싸움질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게다. 더구나 방앗공이로 병든 아우를 때려서 반은 죽게 만들었으니, 그래도 네가 사람의 자식이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너 같은 놈은 이제 친구하고 할 수 없다. 내가 네놈의 집을 헐어 버리고 이웃하지 않겠다.”
그러자 순창은
“이놈아 내가 내 동생을 좀 때렸는데, 네놈이 무슨 참견이냐!”
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여척에게 발길질을 했다.
여척은 화가 상투 끝까지 올랐다.
“이놈 내 의리를 가지고 네놈을 권하는데, 도리어 발길질을 해? 좋다 나도 네좀을 좀 차 보자!”
라고 하면서, 여척은 발길질로 순창의 배를 걷어찼다.
순창은 엉금엉금 기면서 얼어나지 못하더니, 다음 날 급기야 죽고 말았다.
집사람들은 이 일을 숨기고 관가에 고발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 마침내 이 일이 발각되고 신여척은 관가로 잡혀갔다. 이 사건은 기유년 7월에 발생한 일이다.
이에 임금께서 몸소 이 사건을 다루었다.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다. 종로 네거리 담배집에서 어떤 사람이 패관소설을 입으로 외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어떤 대목에서 영웅이 여지없이 실패하는 장면에 이르자,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더니, 느닷없이 담배 써는 칼을 들어 소설을 외우던 사람을 쳐서 죽여 버렸다. 대체로 세상에는 이따금 맹랑하고 우스운 죽음이 있다지만, 저 주도추나 양각애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던가. 신여척은 진정 주도추나 양각애와 같은 부류라고 하겠다. 여척은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른 말이 아니겠느냐. 사형수의 정상을 적어 올린 글에 전후해서 몇 천 건이 되었건만, 그 강개하고 의협적인 점은 여척에게서 처음 보았다. 그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니, 나는 이 두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찬양할 수밖에 없다.”
금상께서는 성덕과 관인으로 중대한 옥사를 심리함에 있어서 그들을 마치 병든 사람 생각하듯 하시었다. 밤새 숙고하시는 까닭으로 아침 늦게야 수라를 드시었다. 밤에는 늦도록 촛불의 심지를 여러 번 돋우시며 의심나는 곳을 헤아려 참된 것을 발견하셨다. 그리하여 어진 말씀이 내리자, 온 나라 안이 크게 기뻐하였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김은애나 신여척은 정의로써 사람을 죽였으므로 사면을 받은 것이다.
아 아! 만일 은애나 여척이 명군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럭저럭 시일을 끌다가 하루아침에 남을 모함하는 자가 두려움을 모를 것이며, 우애 없는 자가 잇달아 생길 것이다. 따라서 은애를 사면함으로 인하여 신하된 자는 충성하기를 좋아하였고, 여척을 풀어 주니 아들인 자가 효도에 힘쓰게 되었으니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대개 충신은 그 몸을 깨끗이 하고, 효자는 그 아우에 대해서 우애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충효가 널리 일어나는 것은 밝은 임금의 교화가 널리 베풀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