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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백백프로젝트

[100-018] 서울의 전차? 41.

100-018

 

서울의 전차? 41.

 

PART 02 : 궤도와 바퀴는 사람들의 발이 되고 : 전차가 개편한 도시 공간 : 전차는 경성의 윤곽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양이 경성이 되었으면 한양의 윤곽이 경성 아닌가? 뭔 윤곽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지? 도시계획에 따라 전차 노선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초의 도시 계획은 1970년대라고 필자는 본다. 필자가 1960년대 중반 필자 시골에 물레방아 전기가 들어 왔다고 전기의 역사에 기술했다. 동네 언니의 증언이었다. 얼마 전 오빠에게 물레방아 전기에 대해서 물어 봤다. 우리는 물레방아 전기를 썼냐고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에게 전기 만들어 팔자고 누군가 선동을 했다고 한다. 물레방아전기 만들어 팔아 돈을 벌자고 투자하게 해서 동네가 망했다고 한다. 필자 듣기에 딱 사기를 당했다. 물레방아로 전기 만들어 100가구가 넘는 필자 동네도 공급이 안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을 만든 이들이 집성촌에 침투해 돈을 알려주었던 것 같다. 집성촌에 있던 기와집은 기와가 아니고 함석이었다. 물레방아 전기 사업으로 사기를 치고, 함석지붕을 외지인이 들어와 시범으로 얹졌다. 보기 좋고 그럴 듯하니 너도나도 함석지붕을 얹졌다. 초가집은 가난해서 지붕을 함석으로 못했다고 매도를 했다. 초가지붕은 돈이 들지 않는다. 이 부분은 다음에 자세히 다뤄보겠다. 최초의 도시 계획은 1970년대 계획도시를 만든 것이 시초라고 본다. 연탄개발해서 서울 등 대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연탄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서울은 탄생하지 않았다고 본다.

1912년부터 진행된 시구개정사업(市區改正事業)이라 불리는 도로 개수 사업은 도심부 도로를 개수하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남촌를 중심으로 먼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일본인들은 진짜 바다 건너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고 필자는 본다. 필자 시골 함석지붕을 최초로 얹은 사람은 외지에서 들어온 일본인이라고 했다. 일본 말을 쓰는 사람이 우리말도 잘했나? 어떻게 동네 사람들과 소통을 했을까?

 

이어서 다음에 보충하겠다.

서울에 전차는 없었다. 전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