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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 119.
PART 03 : 70년간 운행의 종료 : 전차여! 안녕 : 철거된 궤도, 멈춰선 전차 : 서울특별시 시영 전차 운임 조례 개정 1967년 6월 24일 : 1980년대 중 후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엄청 떠들썩했다. 대통령 선거를 먼저 했는지 국회의원 선거를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다. 필자는 그때 공장 다니던 시절이었다. 밖에서 선거 유세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명함을 많이 뿌린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도 일하다가 투표하러 가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투표하러 나가는데 대문 밖 돌 위에 명함이 놓여 있었다. 필자는 그것을 주워서 보고 그 사람을 찍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대문 밖에서 명함 주운 것만 기억이 또렷하다. 1970년대 면장 선거를 했으면 필자가 기억 할 수 있는 것으로 두 번 했어야 한다. 선거 투표 그런 것은 들어 본 적도 없다. 대통령 선거는 그렇다 쳐도 1980년대 초반에 국회의원 선거는 있어야 한다. 없었다. 4년에 한 번씩 하니까 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서울시가 특별시가 된 것도 몇 십 년 안 된 것으로 필자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서울시를 특별시로 승격했다는 뉴스인지가 어렴풋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전라북도가 전북특별자치도가 된 것처럼 말이다. 2. 개정이유/ 가. 현행 운임은 1957년에 인가된 운임으로서 이후 10년간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여 왔으나 도매 물가지수를 비롯한 각종 공공요금은 계속 상승하여 다른 물가와의 불균형을 나타냄으로써 적자 요인은 누적되어 가고 있며/ 딱 현대 지금 이야기이다. 한국은행 화폐자료에 보면 1966년에 1원, 5원, 10원짜리를 발행을 했다. 그때는 도시가 없었다. 집성촌 시절이었다. 그때가 도시계획의 시발점인가? 1966년 1원, 5원, 10원을 발행 한 것은 버스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1969년대 후반 1970년대 중반까지 돈보다는 쌀가마니 등 곡식으로 거래를 했다. 필자 아버지도 1971년에 쌀 열가마니고 삐다 기계를 샀고, 가골 땅을 살 때도 쌀로 준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돈으로 쌀가마니를 사서 거래 한 것 같은데 실제로 쌀을 건네준 것은 필자가 봤는데 기억을 못하는지 아님 못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쌀가마니로 거래 한 것 같은 기억이다. 필자가 1970년대 국민 학교 다니면서 버스를 가끔 타긴 했다. 하지만 돈을 내고 탄 것 같진 않다. 하교하는데 버스가 저기서 오면 아이들이 쭈욱 늘어서서 절을 했다. 입으로는 태워주세요. 태워주세요를 외치면서 말이다. 그러면 맘씨 좋은 기사님은 웃으면서 태워주기도 했다. 눈이 많이 올 때는 동네 어른들이 지나가는 버스는 잡고 계란 한줄 주면서 아이들 태워달라고 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기도 했다.
필자 추측대로 1원, 5원, 10원이 교통요금을 받기 위해서 발행되었다면 이 땅의 신작로는 1966년도에 완성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언제부터 공사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도로 공사가 끝나고 버스를 운행하는데 요금을 받아야 하니까 돈을 발행 한 것으로 본다. 1980년대 초반 교통요금은 1원짜리는 보기 힘들었고 5원짜리 10원짜리를 한 주먹 쥐어서 버스 안내양 즉 차장에게 주었다. 1966년도가 대중교통의 시작이었을까? 답답하다 세월이 50년 전 60년 전도 자료가 없다. 가짜 자료만 난무하다. 현재 60살 이짝 저짝의 사람들은 전기가 본인들 어릴 때 들어 왔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 기억은 자료로 남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들 살아온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지식인들이 기록한 기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거짓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양심선언을 하면 좋겠지만 이제까지로 봐서 헛된 기대이다. 구멍을 남겨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다음 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