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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장

[100-30] 김구 피 묻은 옷 문화재 되다?

김구 피 묻은 옷 문화재 되다

 

   1949년 6월 26일 오후에 김구는 경교장에서 점심을 먹고 서재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 때 손님이 찾아왔다. 육군 포병사령부 장교이자 김구가 이끌던 한국독립당 당원이었던 안두희였다. 군복 차림에 비서진에게 백범 선생에게 문안인사 드리러 왔다고 하고 비서진들의 안내에 따라 1층에서 대기하였다. 그 직후 헌병 대위 강홍모가 군용차에 필요한 휘발유를 얻기 위해? 방문하였고 안두희의 양해를 구하고 먼저 김구를 만났다.(휘발유를 김구에게 얻나) 강흥모가 나간 후 비서진들은 아무런 검문이나 경계 없이 안두희를 김구가 있는 서재로 보내주었다.

   서재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던 중 비서로부터 포병장교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며 보고를 했고, 들어오라고 하여 안두희가 들어갔다. 안두희는 “선생님 먹을 갈아 드릴까요?”라고 묻자 김구가 고개를 들어 안두희를 보려는 순간 안두희는 미국제 권총을 꺼내들어 약 1미터 거리에서 김구를 향해 4발의 총탄을 발포를 했다.(나무위키)

  김구 사저는 2층이다. 계단을 올라가서 오른쪽 복도를 따라 가다 꺽어서 또 꺽어져 디긋자 모양 복도가 있고 김구가 총맞은 자리는 창쪽 복도였다. 책상도 작았다. 복도가 넓지는 않았다. 먹을 갈아 드릴까요? 면 바로 앞일 것 같은데 1미터 앞에서 또 총을 쐈다고 한다.

   안두희는 경교장을 빠져나가다가 경교장 경비들에게 잡혀서 헌병사령부로 연행되어 소자를 받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15년으로 감형 되었다.(나무위키)

   국가 유산청은 2009년 김구가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총 맞을 때 입고 있던 옷들을 문화재로 지정을 했다. 백범김구 선생기념사업협회와 협의하였다고 한다.

   김구는 얼굴과 목, 가슴 그리고 배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김구가 경교장에서 총 맞을 때 입고 있던 옷들을 보자.

   상의 조끼적삼? 저고리, 조끼와 하의는 바지와 속곳을 입었다. 총 5벌의 옷을 입었다. 조끼적삼은 처음 들어본다. 옷 입는 순서를 생각해보면 저고리를 먼저 입고 조끼를 입고 다음에 조끼적삼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끼가 피가 제일 많이 묻었어야 한다. 조끼가 제일 깨끗하다. 조끼적삼은 뭘까 암튼 그렇다고 하니 한번보자 조끼적삼은 다섯 벌의 옷 중에 혈흔이 제일 많이 묻었다. 단추 자국이 선명하다. 겉에서 묻힌 것으로 보인다. 저고리는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핏자국이 왼쪽 옆구리에 있다. 조끼는 왼쪽 가슴위에 핏자국이 있다. 하의인 속곳에도 배에 어디를 맞았는지 핏자국이 옆에 조금 있다. 바지는 반대 방향 허리춤에 핏자국과 가운데 조금 묻었다. 김구가 양말에 개량토시를 착용했다고 한다. 양말은 깨끗하다 갈색 양말이다. 그 시절에 버선을 신었을 것 같은데 양말이다. 그리고 토시는 까만색이다. 1949년에 저런 토시가 있었나 싶다. 대님도 있다, 대님도 거의 깨끗하다. 총을 4방이나 맞았는데 핏자국이 다 다르고 깨끗한 편이다.

   핏자국이 다른 옷들을 국가유산청(문화재청)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했다. 문화재청에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다. 오래된 일이라 모른다고 한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 보았다. 문화재 지정할 때 사진 찍었는데 사진 찍을 때 이상하다는 생각 안들었냐고 물어 보니 안들었다고 한다. 기사 행태를 보면 기관에서 보도자료 주면 그걸 아무런 생각 없이 기사를 내는 것으로 보였다. 기자들은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보도자료만 받아 지면에 실고 있었다.

 

 핏자국이 다른 옷들을 버젓이 문화재로 지정하고 기사까지 대대적으로 냈다.

김구 문화재 지정 물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