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신서(解體新書)로 본 우리나라 인쇄변천
해체신서(解體新書)는 1700년대에 일본에서 냈다고 하는 인체 해부도이다. 해체신서(解體新書)의 일본판이라는 원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번역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순 한자를 썼다는 것은 해체신서(解體新書)가 유일하다. 일본이 순 한자로 번역 책을 냈을까? 의문이 든다.
필자는 해체신서(解體新書)의 순 한자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만든 책이라고 본다. 총 다섯 권으로 되어있다.
1권 서문은 필사(筆詞) 한 것으로 보인다. 인쇄체가 아니다. 다음 자서는 인쇄체이다. 세로로 여덟 줄이다. 구결이 많다.
범례는 열 줄이다. 글씨가 작아졌다. 위에 문장 시작마다 한일자를 넣었다. ‘조선씨족통보’도 이렇게 썼다. 열 줄에 중에 한줄 밑에 또 작은 글자를 만들어 넣었다. ‘훈민정음 해례본’도 그렇게 썼다. 쓰다 보니 요령이 생겨 글씨가 작아지고, 덧붙일 말이 있어서 보충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필사(筆詞)할 때는 글자가 크다, 인쇄체 여덟 줄도 제법 크다. 10줄은 확연히 작아 보인다. 더 작은 글씨도 파게 되었다고 본다.
한자로 필사(筆詞)를 하다 보니 사람인지라 팔이 아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안 해 낸 것이 목판으로 보인다. 나무에 글자를 새겨 조각을 해서 글자 배열을 맞추어 등사를 하는 것이다. 나무는 물을 먹기도 하고 마르면 뒤틀어진다. 오래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뒤에 고안해 낸 것이 금속 활자이다. 금속은 습을 먹지도 마르지도 않으니 한번 만든 글자는 마르고 닿도록 쓸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활자는 고려시대 1377년 우왕 3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고승이었던 백운 경한이 쓴 책을 금속활자로 뜬 것이라고 한다. 고려 우왕 때 직지심경을 금속활자로 찍었다면 의문이 든다. 금속은 어디서 났다는 말인가? 우왕 때도 철을 생산을 했나? 금속활자는 글자 거푸집을 만들어 쇠를 녹여 부어야 한다. 쇠를 추출하고 글자까지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는 것인가? 금속은 만들어 놓으면 오래가기 때문에 조선시대도 쭈우욱 써야 한다.
조선의 태종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자소를 만들어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정해자’를 제작했고, 세종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금속활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갑인자’를 창조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이미 금속활자 제조 기술이 있었다는데 조선은 새로 창조를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같은 땅에 살 던 사람들이 아닌가 보다. 고려시대 기술은 다 버리고 기술자도 다 죽였나? 태종 때 기술자도 죽였나?
20세기 중후반 역사를 날조 하면서 고안해 낸 것으로 보인다. 목판이 만들기는 쉽지만 보관이 어렵다. 마르면 틀어지고 부셔지기 때문이다. 목판은 금속활자처럼 녹여서 만들 수 없다. 일일이 조각칼로 파야 한다. 조선시대는 목판이 많다고 한다. 조각칼을 조선이 생산 하였다는 말인가? 조선이 아니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 철을 생산했다면 철근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집들이 흙집이었다. 기록은 기술이 엄청 발달했는데 현실 생활은 원시적이었다. 7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말이다. 시골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쇄의 변천은 필사(筆詞) → 목판 → 금속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