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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산업혁명을 쓰다가 양모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었고, 우리나라 면양 목장이 전북 남원 운봉읍에 있었다는 것을 들어서 알기에 면양이 언제, 몇 마리로 면양목장을 시작했는지 알아보다가 소로 넘어갔다.
일명 김종필 목장이다. 원명은 삼화목장이다. 삼화목장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위치하였던 6백38만평 크기의 목장이다. 목장에 처음에 소를 몇 마리로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연혁을 보면
1969년 목장 조성 사업이 시작되었다.
1969년 1월 삼화축산주식회가가 설립되었다.
1980년 운정장학재단 삼화 농장으로 변경되었다.
1982년 5월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1982년 10월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서산목장으로 변경되었다.
1983년 7월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서산종축목장으로 변경되었다.
1985년 12월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로 변경되었다.
1996년 1월 축산업협동조삼중앙회 개량사업본부 한우개량부로 개칭되었다.
등등 현재
2011년 1월 1일부터 농협중앙회 가축개량원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이다.
어떤 종류의 가축을 몇 마리로 시작했다는 말이 없다.
대관령 삼양목장
1972년 2월 24일 삼양축산개발주식회사 설립.
1972년 5월 10일 대관령목장 개장
1974년 7월 18일 사육두수 2천두 돌파
1977년 유우소 500두 호주, 캐나다에서 수입
1978년 심멘탈(젖소) 100두 캐나다에서 수입
1978년 10월 26일 은탑산업훈장 대통령 표창(제 164호)
2007년 4월 28일 관광사업 시작
삼양목장도 개장 시 몇 마리의 소가 있었는지는 말이 없다. 개장 2년 후에 2천두가 넘었다고 한다. 소는 임신기간이 280일이다. 몇 마리로 시작을 해서 2천 마리가 되었는가? 새끼를 낳아서일까? 수입을 해서일까?
우리나라는 가축을 집에서 키웠다. 소는 집집마다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 농기계 임대업은 소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우도 60년대에 수입한 것일까? 면양처럼 말이다.
면양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했는데 소로 넘어가 버렸다. 소도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