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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장

[100-42] 정율성 미스테리

100-42

 

정율성 미스테리

 

정율성(1914~1976)은 작곡가로 일본령 조선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28년 개신교 계열의 숭일소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29년 전주신흥학교에 입학했으나 의열단 가입을 위해 1933년 중퇴 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 난징시로 건너가 조선혁명군 정치간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1936년 첫 작품으로 오월의 노래(五月之歌)를 작곡했다고 한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난징을 떠나 1937년 10월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에 가서 본격적인 공산당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38년 무렵 당시 중국 공산당의 거물 저우언라이 전 국무원 총리의 양녀와 연애를 했는데 발각되어 당내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연애를 하는데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 불가다.

작곡 활동과 함께 1941년 7월부터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비롯해 1942년 12월부터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 소속되어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개명하여 대한제국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이 강제로 대한제국을 일본과 합방하였다. 합방을 하고는 대한제국의 전신인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썼다고 한다. 일본령 조선이라고 한다. 그 조선이 둘로 갈라져 남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다가, 북조선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되고 남조선은 대한민국이 되었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흐릉이다.

정율성 이력을 보면 그 혼란한 시절에 전남 광주에서 전주로 중국으로 많은 곳을 다녔다. 피아노를 예로 들어보자, 피아노는 보통 4~5살부터 시작한다. 또 전공이라도 할라치면 죽어라 연습한다. 교수들 피아노 연습한 스토리 들어보면 죽어라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에 또 연습을 한다.

부유한 집에서 음악 공부에만 매진해도 힘들 것 같은데 작곡에 피아노에 바이올린에 성악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한 사람으로 보면 신이거나 뛰어난 천재다 몸이 알아서 피아노치고, 작곡하고, 바이올린 연주하고, 성악도 했다는 것인가? 정율성이 사진이 있다. 그럼 피아노를 치는 거나 바이올린 켜거나 성악하는 영상이 있는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정율성 나무위키 사진도 혼자 있는 사진과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사람이 달라 보인다. 동글한 얼굴은 한 사진과 날카로운 얼굴의 사진이다.

정율성이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곡이 북조선국립영화촬영소에서 1948년 제작한 조선인민군 창설 기념 영상 말미에 삽입되었다고 한다. 그거 외에 다른 영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학교는 약력에 없다. 일반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음악을 가르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학교생활을 꾸준히 하지도 않았다. 작곡을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지, 악기와 성악을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지는 이력이 없다. 정율성 학교 이력은 숭일소학교 졸업(1928년) 전주신흥학교 중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이다. 음악과 관계가 없는 학교들이다. 미스테리다. 정율성이 이력이 사실이라면 그 시절에 피아노 바이올린은 어디서 어떻게 구입했을까?

정율성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는가? 실존인물인가? 배우인가?

 

정율성 출처 나무위키
보안간부훈련대대부 구락부장 겸 협주단장 복구 당시 인민군복 차림의 정률성 소좌. 왼쪽 당쉐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