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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장

[100-43] 이병도 고찰

100-43

 

이병도 고찰

 

이병도는 1896년 9월 20일에 경기도 용인군 상동면 노루실(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 노루실마을)에서 5남 3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한성사법학교부속보통학교와 보광학교, 중동학교,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에서 사학 및 사회학을 전공하였다고 한다. 어려서는 또 한학을 수학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만 11세에 작고하였다고 한다.

이병도는 1910년 15세에 조성근의 장녀 조남숙과 결혼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11세에 돌아 가셨다. 이병도는 조혼을 하여 9명의 자녀를 낳았다. 공부는 일본유학까지 가면서 꾸준히 했다.

이병도는 일본 유학 중에도 자녀를 낳았다. 이병도의 자녀들과 손자들은 우리나라 학계를 주름잡고 있다. 이병도 집안이 엄청나게 부자여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들이 뒤를 봐줬을까? 결혼도 일찍하고, 자녀도 2년 3년 4년 터울로 9명을 낳았다. 공부도 계속했다.

거기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일 할 때는 무보수 촉탁을 했다고 한다.

이병도는 한학에 법을 배우고 일본 유학 가서 역사학자가 되었다. 장남 이기령은 분자생물학자 / 생화학자. 차남 이춘녕은 농화학자와 육군 소령. 3남 이태령은 생화학자. 4남 이동녕은 핵물리학자. 손자 이장무는 공학자. 손자 이건무 고고학자이다. 딸 이순경의 남편은 장욱진 화가이다. 장욱진 화가?에 대해서는 따로 다룰 예정이다.

이병도 가계를 보면 신분세탁, 학력세탁 냄새가 팍팍 난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들이 프로필에 두 명 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잘 산 거 같진 않다. 그 시절에 부인이 돈을 벌었나. 아님 처가에서 자네와 자식들은 공부만 하게, 하고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해줬나? 유학도 부인하고 같이 가서 일본에서도 자녀를 낳았나?

이병도는 서울대 대학원 인문과학 박사라고 한다.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은 석, 박사 과정 밟으러 간 것이 아니고 심심해서 유학가서 서양사를 할까 하다가 동양사를 전공하였다는 말인가? 와세다 대학은 학사 과정인가?

이병도 형제들은 8남매이다. 5남 3녀 프로필에 이병묵(형)과 이병영(누이동생) 둘만 기재되어 있다.

필자의 추정은 우리나라 학교는 50년대 중반 국민학교를 시작했고, 대학은 1960년대 중반쯤으로 본다. 서울대학은 1970년대 초, 중반으로 본다. 서울 혜화동에 있다가 관악산으로 이사 했다는 것은 역사를 부풀리기 위해서라고 본다. 경성제국대학 이라고 떠도는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본다.

정율성처럼 배우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 근대 작가들 실존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소설속 인물에 배역을 맡았을 것으로 본다. 국립영화제작소 대한뉴스 소속 배우들

 

이병도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