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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
윤심덕은 1897년 7월 25일에 조선 평안남보 평양부 現 평양시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926년 8월 4일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 장소는 대한해협이라고 한다. 학력은 평양 숭의여자중학교 졸업,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도쿄음악학교 갑종사범과를 수료했다고 한다. 다이쇼 15년(1926년에 작성된 도쿄음악학교 졸업생씨명록에 윤심덕은 다이소 12년(1923) 3월에 갑종사범과를 수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졸업 당시 기록이 아니고 3년 후의 기록이다. 사범과 중등교사 양성 학교라고 한다. 음악학교에서 사범과를 수료했다고 할까?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언제 들어가 언제 졸업했는가? 그리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또 들어가 사범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고등보통학교가 사범과도 있나보다. 국민 학교는 없고.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다녔다는 말이 된다. 직업은 가수와 성악가라고 한다. 장르는 서양 고전음악과 대중가요하라고 한다. 만능이다. 언제부터 성악을 공부했는가?
한반도 최초의 공식 여성 성악가, 소프라노 가수로 대표곡은 <사의 찬미>가 유명하다. 극작가인 김우진과 대한해협에서 동반 자살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관비유학생’으로 발탁되어 일본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고등보통학교를 두 번이나 다녔으면 나이가 20살이 훌쩍 넘었을 것 같다.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성악을 전공했다고 한다. 성악을 성인이 돼서 금방 배워서 유명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1923년 26살에 학업을 마치고 귀국을 했다고 한다. 1926년 자살 하던 해아 여동생의 미국 유학을 위해서 돈을 모으고자 일본에 음반을 취입하기 위하여 갔다가 사의 찬미를 녹음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이 이웃집이다.
일본에서 김우진을 만나 독일로 유학을 떠나라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둘은 8월 3일 부산행 부관연락선 도쿠주마루에 탑승하였고 다음날인 8월 4일 배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동생 유학자금은 마련해서 보내주고 본인은 사랑하는 남자와 동반자살을 했다는 것인가? 그 시절에 일본을 자주도 왔다 갔다 한다. 동생의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본까지 가서 노래를 녹음하던 열성이 있었는데 갑자기 죽어버렸다. 윤심덕이 녹음했다는 회사는 1926년에 생긴 회사였고 1928년에 사라졌다고 한다.
근대 문학들은 다 어둡고 음침하다. 필자는 그 문학작품들은 근대에 쓰지 않았다고 본다. 현대에 없는 역사를 통해서 작품을 만들다 보니 지나치게 어둡고 음침하게 써내려 간 것으로 보인다. 국문과 교수들은 소설을 현실화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모티브는 우리네 삶에서 얻는다. 소설을 가지고 현실이라고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도 영화 드라마 흥행을 위해서 현실이라고 바이럴을 한다. 현실대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면 아무도 안 본다. 나무위키의 윤심덕 사진을 보면 윤심덕은 현대 여성이다.
1926년에 망사 소매 옷은 없다. 망사 옷은 나온 지가 몇 십 년 안 된다. 목걸이에 눈썹도 찐하게 그렸다.
윤심덕이 다녔다는 도쿄음악학교 연혁을 보자. 1907년에 도요 음악학교 창설, 1911년 도요 음악전문학교로 개칭, 1954년 도요 음악단기대학 개교, 1963년 4년제 도요 음악대학 설치, 1969년 도쿄 음악대학으로 개칭이다. 연혁으로 보아 도쿄 음악대학은 1963년이나 1969년에 최초 개교 한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