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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20

[100-56] 단지의 신화 마포주공아파트 목차 훑어보기 1.

100-56

 

단지의 신화 마포주공아파트 목차 훑어보기 1.

 

앞장에서 마포아파트를 쓰다가 발견한 단지의 신화 마포주공아파트저자 박철수를 발견하여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있어서 언능은 무인도서 신청을 하였다.

 

목차를 훑어보기 해보자

 

1. 전사(全史) : 프롤로그

공화당의 제7대 대통령 선거광고 : 1971411조선일보1면 하단에 민주공화당 제7대 대통령 후보 박정희의 광고다. 공화당과 함께 풍요한 결실과 행복한 생활을! 기호 1번 박정희 오른쪽에는 남자가 나락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은 마포아파트 인지를 배경으로 남녀가 앉아 있고 어린아이가 뛰어 오고 있다.

쿠데타 세력의 국가 프로젝트 만들기 : 5 · 16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밀어붙인 대표적인 국가 프로젝트가 마포주공아파트라고 한다. 아파트를 준공하는데 미국에 초청장을 보냈다. 그것도 영어로 보냈다. 참석여부 검토 보고서도 있다. 출처는 미국 국립 문서기록관청이다. 한미경체협력위원회 수석 주택고문관 귀도 낫조를 건설부 주택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고 한다. 1962925일이다. 미국이 중국보다 가깝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 건설부 자문위원을 한다. 이해하기 힘들다.

많은 것들의 시작점, 마포주공아파트 1차 준공식 : 준공식은 소박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한미경제협력위원회 대표인 킬렌에게 초청장을 보냈으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준공식이 소박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오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아니면 킬렌이 한국에 거주했나?

2. 그대 산업시설의 태동지 : 도화동 연와공장

대한주택영단의 마포주공아파트 부지 : 쿠데타 직후 1961528일 대한주택영단의 나익진 이사장이 퇴임하고 장동운 중령이 취임했다고 한다. 현역 중령의 신분으로 대한주택영단에 부임을 했고, 대한주택영단이 대한주택공사로 바뀌면서 초대 총재를 했다고 한다. 주택공사 대표가 사장이 아니고 총재라고 한다. 장동운이 쿠데타 직후부터 고층 및 단지식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0년대에 초가집이 수두룩했고, 단층 기와집과 1~2층짜리 양옥집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장동운은 10년 앞서 아파트를 어떻게 알아서 아파트 그것도 단지 식을 지으려는 계획을 가질 수 있었을까?

대한주택영단의 이사장의 지시에 따라 마포구 도화동 6번지, 7번지의 1호와 2호등 여섯 필지 총 18,753평과 지상 건축물 등을 대상으로 최초의 실태조사를 마친 것은 196181일이라고 한다. 516일에 쿠데타를 했는데 81일에 실태조사를 마쳤다고 한다.

도화동 연와공장 : 마포형무소 노역장이었던 채소밭은 원래 벽돌공장이 있던 자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감옥 마포연와공장으로 불렸다고 한다. 도화동의 벽돌공장은 호프만식 가마라고 한다. 1854년 독일의 폴만이 고안한 윤형실(輪形室)가마를 응용해 1858년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호프만이 개량한 것으로 바깥의 연소실을 없애고 천장에 투탄구를 두었으며 칸막이벽을 제거하는 대신 가마위에서 철판으로 칸막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도화동 벽돌공장 호프만식 가마 전경 이미지를 보면 지붕에 엄청 큰 기둥이 서 있다. 참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다. 이미지 출처는 없다. 이미지로만 보면 기둥 때문에 집이 무너질 것 같다.

마포구 도화동 7번지 : 경성우편국 전화가입자 명부에 실린 경성감옥 마포연와공장의 주소지는 경성부 도화동 7’이라고 한다. 경성우편국이 있었고 전화 가입자가 있었다고 한다. 1961년에 전기도 없었는데, 전화번호부는 80년대 있었다. 두꺼웠다. 전호번호부 뒤져서 전화하곤 했다. 1961년에 전화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전화는 무선인가? 그래서 박정희가 비행기 안에서 청와대 자녀들과 통화를 했나보다. 출처가 대한주택공사 주택단지총람 1954~1970라고 한다. 검색은 되지 않는다. 주택공사에 문의해 봐야겠다. 주택단지총람 1978-1980은 검색된다. 1954-1970은 검색되지 않은 것인가?

없는 서대문 형무소 만들어 독립문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만들고, 마포에 마포 형무소 역사관 만들려다가 실패 한 것인가? 우리나라는 70년대 80년대까지 집성촌이었고 경찰이 필요 없는 나라였다. 교도소 만들고 형무소까지 만들어 공문서 날조해서 만들어 냈다. 벽돌공장이 들어선 일대는 도화동 6번지와 7번지가 대부분인데 6번지는 밭()이며 개인 소유고 7번지는 대지()1913년에 이미 국유지였다고 한다. 마포주공 아파트는 도화동 6번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포 아파트 건설부지가 일제강점기때부터 한강의 상습 범람지였다고 한다. 대지였다며, 대지는 집 짓는 땅을 대지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상습 침수지역이었다고 한다. 대지와 밭이 갑자기 하천이 되고 침수 범람지역이 되었다.

1925을축년 대홍수에 마포형무소 연와공장이 침수되었다고 한다. 마포형무소는 침수되지 않았나? “대지로 사용하려는 땅은 원래 마포형무소에서 농장으로 사용했던 것을 싼값으로 매입한 것이었는데 본래 이곳이 자갈밭의 하상(河床:하천의 바닥)으로서 둑이 없었던 시절 홍수가 날 때는 그곳까지 한강물이 범람하였으므로 지반이 견고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622월에 마포형무소 시절부터 있었던 법무부 관사 거주자 10명 가운데 3명이 철거비 10만 환으로는 관사철거와 명도에 동의할 수 없다라며 퇴거를 거부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자기 집도 아니고 관사를 철거하는데 철거 비 10만 환을 주었는데 그 돈이 적다고 관사철거와 명도에 동의를 거부 했다고 한다. 개그콘서트다.

다음 편에 이어 가겠다. 다음 편은 얼마나 재미 질지 기대된다. 흥미진진하다.

단지 신화의 시작 마포주공 아파-트 표지

아파-트 아파하고 트에 선을 넣어 띄어 썼다. 아파는 "방물장수"라고 한다. 아파하고 트를 띄어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