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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역사
한국시멘트협회 시멘트의 역사를 보자
1824년 영국에서 벽돌공이었던 애스프딘(J. Aspdim)이 석회석을 구워 생석회를 만들고 이것에 물을 가해 미분말의 소석회를 만든 다음 점토를 혼합하고 다시 석회로에서 800℃까지 소성, 크랑카를 생산한 후 미분쇄하여 시멘트를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는데 이 제조법은 이중소성방식을 이용함으로써만 시멘트보다 품질이 우수하여 영국특허국에 특허를 얻었으며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포틀랜드 시멘트의 시초가 되었다. 애스프딘이 특허를 받은 후 200여 년 간의 계속되는 시멘트 제조법의 연구는 계속되어져 1845년 (존슨(I. C. Johnson)이 석회석과 점토의 배합비율, 소성온도 등의 제조조건을 밝히는 등 시멘트제조학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이렇게 하여 오늘날 쓰이고 있는 포틀랜드 시멘트가 탄생되었다. 경화한 시멘트의 색깔과 경화현상 등 이 당시 건축재료로 사용되던 포틀랜드산 천연석과 유사하여 유래된 포틀랜드 시멘트는 1850년경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에 제조공장이 건설되고 제품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크게 사용되기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시멘트협회 시멘트의 역사에 우리나라에 서양 제조법이 언제 들어왔는지는 내용이 없다. <문종실록>의 원년 1451년에 삼원초에는 통사 김추가 중국에 갔을 때 그곳 석회번조법을 묻고 들은 바를 왕에게 상주하여 우리나라에도 석회번조법이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고 한다. 선조 26년에 석회탄, 선저 38년에 구성의 석성을 번벽으로 보축했다는 기록이 있고, 박제가의 화학의(化學議)에도 <今舊光化門有灰法宛然(금구광화문유회법완연)>이란 문구에서 석회사용에 대한 일례를 볼 수가 있다 로 만 되어 있다. 서양식 시멘트가 언제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사용하게 되었고, 공장은 언제 지어서 대량 생산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우리나라는 기록의 나라라고 한다. 현실 기록은 하나도 없다. 필자가 역사연구하면서 언제부터 서양 기술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공장은 언제부터인가 알아보면 기록만 이야기 한다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없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이 들여와서 8.15때 일본이 철수하고 그 공장들을 미군이 접수해서 한국인들에게 불하를 해줬다고 한다 그것만 앵무새처럼 답변을 한다.
시멘트만 생산을 해서는 브로크 건물 밖에 지을 수 없다. 대형건물 고층 건물은 철근콘크리로 짓는다. 구 서울시청 건물 1926년에 지어서 경성부 청사로 쓰다가 광복 후 서울시가 청사로 사용했다. 구 서울시청 건물이 무엇으로 지어 졌냐고 시청에 문의를 했다. 석조라고 대답을 해서 그 큰 건물을 석조 즉 돌로만 어떻게 지을 수 있냐 물으니 콘크리트로 짓고 외장을 석조로 마감했다고 한다. 시청건물 허물 때 사진을 보면 철근이 보인다. 철근 콘크리르로 짓고 외장을 석조로 마감해서 석조 건물이라고 한다. 덕수궁 석조전도 안에 무엇으로 지었는지 들여다 봐야 한다.
다음에는 콘크리트 역사를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