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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교자 유해 발굴 보고서로 고고학 파헤치기?
『한국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해의 진정성에 관한 기록』<천주교 전주교구>
공동묘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공동묘지는 학자들은 일제 때 일제가 시행했다고 하지만 필자의 집 할아버지들 무덤으로 보았을 때 1950년대까지 공동묘지는 없었다. 인구도 많지 않았고 니땅 내땅도 없었다. 그래서 풍수지리에 좋다는 자리 찾아 앞마을 옆 마을 뒷산까지 장사를 지냈다. 80년 말 90년대 들어서 니땅 내땅 따기지 시작했다. 또 농사짓는 사람들이 떠나니 빈 밭에 무덤을 이장하기 시작했다. 필자 집도 밭에다 고조할아버지부터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산소를 이장해 가족 묘지를 만들었다.
1960년대부터 공동묘지를 만들어 장사지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에 공공묘지에 장사를 안지내고 가족묘를 만든 사람들은 이장을 해 갔다. 공동묘지에 남아 있는 무덤들은 어떤 무덤들일까?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169-17번지를 천주교가 성역화하기 위해 묘지를 정리하려고 했다고 한다. 무덤이 여러 기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공동묘지였고 주인이 없어 방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 51페이지 사진으로 봤을 때 봉분이 푹 꺼져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바우배기 사람들이 현 위치에 천주교 관련 묘지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순교자 유해가 발견된 장소는 봉분만 있고 아래에 유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 졌다고 한다.’ 2003년에 공동묘지에 주인이 없어 관리가 안 되어 봉분들이 꺼져있었는데 거기에 십자가를 세우고 봉분을 새로 만들었다.
2021년에 3월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와 전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와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이 공동으로 발굴하고 의과대학에서는 뼈를 유전자 검사를 했다고 한다.
복자 윤지충은 1759년에 출생하여 1791년 신해박해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복자 권상연은 1751년에 태어나1791년 신해박해로 처형되었다. 복자 윤지헌은 1764년에 태어나 1801년 신유백해로 능지처참형을 당했다고 한다.
실제로 천주교 박해가 있어서 사형을 당했다고 해도 200년이 넘었다. 뼈가 분해되는데 얼마나 걸리는 지 누가 실험해 본적이 있는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온다. 홍수가 몇 번 날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 봄, 가을에도 비가 온다. 시멘트 아스팔트 포장 전에는 비가 오면 땅으로 스며든다. 땅속에 미생물이 풍부하다. 발굴보고서의 뼈들은 건장한 중년이 사망해서 30여년 지났을 때 남아 있는 뼈가 같아 보인다. 필자의 아버지를 32년 만에 이장을 했는데 뼈가 딱 저랬다.30년 플러스해서 60년이 되면 뼈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무덤에서 나왔다는 지석은 사발에 붓글씨다. 사발에 붓으로 글을 써서 묻으면 글씨가 남아 있을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200년 동안 남아 있을 수 없다. 붓글씨를 써서 구우면 붓글씨가 남아 있나? 그것도 불가능하다. 1914년 4월 19일인가 붓글씨도 있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고고학은 몇 십 년 전에 이미 작업을 해 놓고 묵혀 두었다. 2~30년 후에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파서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