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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작가들은 실존 인물인가? 이효석 편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196번지에서 1907년 2월 23일 출생하여 1942년 5월 25일 향년 35세에 평안남도 평양부 기림정 자택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학력은 평창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성제국대학 예과(수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 학사이며, 경력은 숭실전문학교 교수와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를 했다고 한다.
사진이 있다. 35살은 더 들어 보이지만 사람마다 얼굴은 노안도 있고 동안도 있으니 뭐라고 하기 그렇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시절 사진도 있다.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재직 시절 사진은 몇 살인지 모르겠으나 건강해 보인다.
가족 관계에 부인 이경원과 이효석, 차녀 유미, 장남 우현, 장년 나미와 함께 1938년에 4월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사진 속은 둘은 남자아이 같고 하나는 여자 아이 같은데. 세 아이중 제일 큰 아이는 여자 아이 같고 세라복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머리가 38년도에 저런 머리로 자를 수 있나? 필자 어릴 때 상고머리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세련되었다. 귀를 팠다. 저 머리는 집에서는 못 자르고 미용실에서 자른 것 같다. 옛날 상고머리는 집에서 자른 머리라 바가지 얻어 놓은 것처럼 잘랐다. 두 남자 아이들도 머리가 현대 머리다.
이효석은 검은 뿔테 안경을 썼다. 부인도 단발파마머리 같다. 뽀글이 파마가 아니라 웨이브가 커 보인다. 배는 임신한 배 같다.
매일경제 기획 연재 이효석 작가 이우현씨 “아버지와 행복했던 평양의 푸른 집 아련해” 기사에 [이효석 장남 이우현 이효석문학재단 상임이사(78)에게 남은 가족사진은 한 장뿐이다. 다섯 살에 여읜 아버지와 세 살에 여읜 어머니를 추억할 소품이다. 부친이 숭실전문학교 교수 시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와의 추억도 빛 바랜 사진만큼이나 흐릿하다. “제가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거의 사라졌지만 퇴근 하실 때면 저희에게 과자도 사다주시고,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 하셨던 게 떠오릅니다. 푸른 기와집의 기억도 어렴풋하고요.”]
장남 이우현의 모친이 세 살 때 돌아가셨으면 뱃속에 있는 아이 일 가능성 높다. 38년도 가족사진하고 맞지 않는다. 세 살 다섯 살 기억이 난다고 한다. 기억력이 대단하다. 그 시절에 과자를 샀다고 한다. 가게가 있었나? 가게 즉 점방은 70년대 초반에 우리 집 작은 방에 점방을 차렸었다. 물건 전시해 놓은 것을 본 기억이 있다. 필자 집 점방이 최초였는지 마지막이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동네에서 돌아가면서 한 것으로 기억한다. 자세한 것은 기억 못하고 울 집에 과자 전시해 놓은 장면은 기억이 또렷하다. 집에 새로운 것이 생기니 뇌리에 박혔나 보다. 그러다 마을 앞에 구판장이 생겨서 구판장으로 점방이 옮겨 갔다.
이효석 스토리 사진을 봐도 근대 작가들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