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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언제부터 만들었는가?
국사편찬위윈회의 역대 국사교과서를 보면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1895~1910), 일제강점기(1910~1945),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1945~1954), 1차교육과정부터(1954~1963). 2차 교육과정(1963~1974), 3차 교육과정(1973~1981), 4차 교육과정(1981~1987). 5차 교육과정(1987~1992), 6차 교육과정(1992~1997), 7차 교육과정(1997~2024)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4번 개편을 했다고 한다.
교과서는 양지로 만들었다. 양지는 어디서 나서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추적하다 보니 아시아 재단에서 1951년 전쟁 중에 신문지 종이를 수입을 해서 문교부에 기증을 했고, 신문지 종이로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시아 재단은 1954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미국과 한국에 동시에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이 참 가깝기도 하다. 아시아 재단이 1951년에 종이를 수입해 기증했고, 기증 받는 사진이 있다.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다는 백낙준 박사가 롤 신문용지를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좀 이상하다. 외부인데 저렇게 롤로 신문지 종이를 가지고 왔다는 것인가? 해서 알아보니 저런 식은 공장안에서 종이를 운반 할 때이다.
대한뉴스에는 1954년에 유네스코가 종이를 수입해 기증을 했고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인쇄공장을 설립해 교과서를 출판했다고 한다. 농사일은 글자를 몰라도 잘 할 수 있지만, 공장일은 글자를 알아야 부려 먹기 쉽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공장을 세우려면 글자를 가르칠 필요가 있어서 1954년에 학교를 세울 계획을 세웠고, 1956년 대한뉴스 제90호를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는 국민 학교 아동들에게 깨끗한 교과서를 필요한 시기에 줄 수 있도록 유네스코와 운크라의 원조를 얻어 건설된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입니다. 최신식에 각종 기계를 설치하고 있는 이 공장에서는 모든 작업이 기계화되어 있어 일관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국민 학교 아동들의 교과서 수요량은 연간 2,500만 부이며 그 중 이천만부를 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기계를 더 구입해서 부족한 500만부도 여기서 인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1956년에 교과목이 몇 과목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구보다 더 많은 교과서를 찍어 냈다. 학교를 전국에 세우니 교과서 수요도 상당 했을 것이다. 국민 학교를 다니다 만 아이들과 졸업한 아이들은 공장으로 나갔다. 공장이든 뭐든 돈을 벌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돈 한 푼 없이 기숙사로 들어갔다. 80년대 중반에도 그랬다. 대형 공장은 기숙사도 어마어마했다. 수십 명이 한방에서 생활을 했다. 대한뉴스 영상은 그 당시 만들었다고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1954년에 종이가 들어왔고 1957년부터 우리나라에 제지 공장이 생겨 종이를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종이를 수입했으면 인쇄 공장은 준비 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국정교과서주식회사는 1952년에 7월 15일에 설립하여 1999년 5월 18일에 해체되었다고 한다. 대방동 건물은 언제 지었는지 필자가 목격한 공장은 2층 건물인지 3층 건물인지 긴 건물이었다. 그 건물은 1960년대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원에서 80 넘으신 어르신에게 국민 학교 언제 들어가셨냐고 물으니 대답을 안 하신다. 한 어르신은 8살에 들어갔다고 하시는데, 몇 년도에 들어가셨냐고 하니 모른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