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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KEPCO) 2.
발전함에 대해서 더 살펴보자. 1948년 2월에 발전함 Jacona에서 2만㎾의 전기를 생산해서 부산에 공급했다고 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전용 배일 것으로 보인다. 배 이름이 Jacona인가? 1948년 5월에 Electra 발전함에서 6,900㎾를 생산해서 인천에 공급했다는 말이다. 한가구가 동일하게 한 달에 300㎾를 사용했을 경우 2만㎾와트는 66가구 정도가 쓸 수 있다고 한다. 6,900㎾는 동일한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23가구가 쓸 수 있다고 한다. 발전함에서 생산한 전기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항구에서 가까운 육지 사무실에 전기를 공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의 변천은 발전함 → 물레방아 →발전소로 일 것으로 보인다. 발전함으로 부산과 인천에 전기를 공급한 것도 1960년대로 보인다.
1964년 4월 : 해방 후 처음 제한송전 전면 해제(총 발전설비 53만1,254㎾). 1965년 12월 : 농어촌전화촉진법 공포. 1968년 5월 발전설비용량 100만㎾ 돌파(3사 통합 후 7년간 3배 증가). 1977년 12월 : 최대수요 조절요금제 실시 동양최초로 최대부하요금제(peak load pricing)도입으로 획기적인 부하관리를 강화(산업용 계약 최대전력 500㎾ 이상 고객). 12월 : 100㎾ 이상 고객 요금조정 전산처리 개시(14,200호).
1978년 4월 : 고리원자력 1호기(58만7,000㎾). 12월 : 최대수요전력 511만8,000㎾ 기록. 1979년 10월 : 전국 농어촌 완전 전화 기념식(신안). 10월 : 국내 최초 해저케이블 전화공사 준공(전남 신안도서지역 23개 섬 1만 6,000여 호, 해저케이블 13.3㎞, 철탑 103기, 공사비 50여억 원). 1981년 12월 : 한국전력(주) 해산등기, 한국전력 공사 설립등기. 1982년 1월 한국전력공사 발족. 1983년 12월 정부투자기관 관리법 공포(1984년. 3. 20 시행령 공포). 1987년 4월 : 원전건설 국내 주도형으로 전환. 4월 : 영광원자력 3, 4호기 공급계약을 국내업체와 체결. 영광 원자력이 1986년 8월 25일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3,4 호기 짓겠다는 계약인가? 국기기록원 자료에 의하면 1981년 2월에 기공식을 하여 1호기가 1986년 8월, 2호기가 1987년 6월에 차례로 상업 운전되었다고 한다. 공사기간이 5~6년이 걸렸다. 6월 : 최대수요전력 1,000만㎾돌파(15:00).
1989년 8월 한전주, 국민주 2호로 주식시장에 상장. 1990년 1월 : 전기사업법 개정 공포. 1992년 12월 : 최대수요전력 5,000만㎾ 돌파, 새한전창달위원회 발족. 12월 : 공기업 고객만족도 6년 연속 1위. 이하 연혁은 생략하겠다. 1990년대인가 한전이 어마어마하게 돈을 잘 벌어 성과급 잔치를 한동안 거하게 한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그런데 요즘은 적자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적자일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 있는 초창기 수력 발전소와 당인리 화력 발전소만 연혁에 있다. 대한민국에 설치한 수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가 연혁에서 빠졌다. 당인리 화력 발전소도 수상하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력발전소든 화력 발전소든 물레방아 빼고 큰 발전소는 1965년 이후에 건설되었다고 본다. 물레방아 전기도 시골은 1960년대 중반이다. 물레방아는 전국적으로 보급되는데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설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대형발전소 시작하면서 일단 소형 물레방아로 동네 몇 집 돌려 사람들에게 전기라는 것을 홍보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갑자기 전기를 공급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전기 들어오고 흑백텔레비전 몇 대 동네 뿌리고 몇 년 후에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물레방아 전기와 흑백텔레비전은 홍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초창기 광고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