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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술의 역사는 기원전 9,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미 맥주를 만들어 마셨다. 와인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지중해 연안 곳곳에서 생산되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술을 만들어 먹었다. 소주는 고려 시대 원나라를 통해 들어왔다.(위키백과)
이화주라는 술이 있다. 술이라기보다 죽에 가깝다 발효죽. 이화주는 백미로 만든다. 세종시대에 막걸리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막걸리는 밀가루와 쌀로 만든다. 보리로도 만든다. 보통 막걸리 하면 쌀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화주의 기원이 고려시대이면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우리는 쌀밥 즉 백미를 먹었다고 봐야 한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자. 필자의 시골 동네는 아랫것에 웃겉에 잿몰 등이 있었다. 필자의 집은 웃겉에에 있었다. 웃겉에는 십여 가구가 된다 그 가운데 길가에 디딜방아가 있었다. 디딜방아 아래에 공동 우물이 있었다. 웃겉에 사람들은 그 디딜방아와 우물을 사용했다. 어릴 때 어느 순간 디딜방아가 없어졌다. 이유는 방앗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기계식 방앗간이다. 방앗간에서는 고추도 빻고, 쌀도 찧었다. 가래떡도 뽑고 떡 만들 때 쓰는 쌀가루도 빻았다. 김치 담글때 말린 고추 불려서 학독에 갈아 김치를 담았다. 고춧가루로 한두번 김치를 담가 보니 학독에 갈아서 김치 담그는 것보다 편리하다. 고춧가루로 김치를 담가 먹게 된 것이다. 떡도 가마솥에 쌀 내지 찹쌀을 쪄서 절구에 찧어서 떡을 만들었다. 방앗간이 생기면서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필자 시골 기준 70년대 초반에도 백미는 없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백미가 있어서 이화주를 담가 먹었다고 한다. 세종시대 막걸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백미 즉 쌀밥을 먹기 시작한 것을 60년대 이후로 본다. 소주는 막걸리를 증류해서 만드는 걸로 안다. 소주는 고려시대 원나라에서 들어 왔다고 한다. 증류 기술이 들어 왔다고 하면 맞을지 모르겠다.
막걸리도 1960년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고 본다. 술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상대대로 먹은 것이 아니다. 서양인들이 들여온 것으로 본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재는 우리 것이 하나도 없다. 날조된 역사로 문화재청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전통도 마찬가지다. 우리 전통은 없다. 날조된 역사에 기록된 것을 우리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재 우리 전통은 깡그리 말살되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아니 70년대 초반까지 우리들은 껍질을 손으로도 벗기기 쉬운 밀과 보리를 주식으로 먹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쌀과 찹쌀도 디딜방아에서 껍질만 벗긴 현미를 먹었다고 봐야 한다. 70대까지 물댄 논이 아닌 직파 농사로 쌀을 재배도 했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논에 물을 댄 논농사를 개발한 것은 서양인들로 보인다. 60년대 이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