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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20

[100-83] 서울의 전차? 8.

 

100-83

 

서울의 전차? 8.

 

PART 1 : 전차의 도입 | 문명의 충격과 의식의 변화 : 근대화에 대한 적응 : 개통 9일 만에 6세 아이가 전차에 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 일로 사람들은 전차를 불 태웠다고 한다. 전차에 석유를 붙고 불 태웠나 어떻게 불태웠는지 궁금하다. 겁에 질린 서양인들이 조선인들이 전차를 악마의 차로 인식한다는 기사를 냈다고 한다. 이는 가물었던 5, 계속 뛰는 물가에 대한 분노가 근대화 사업의 표상으로 이해되었던 전차에 겨누어졌던 것이라고 한다. 1990년대 중후반에 6세 아이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것도 좀 이해가 안 되긴 하다. 그 길은 좁은 길인데 차가 세게 달릴 수도 없는 도로였는데 말이다.

18995월에 가뭄으로 물가가 계속 뛰었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해도 자급자족을 했는데 뭘 사먹을 게 있었을까? 1970년대 후반 우리가 장에서 사오는 것은 라면 한 박스, 밀가루 한 포대, 국수도 사왔냐? 김장때 젓갈, 물엿 한통 등을 장에서 사왔고 나머지는 밭이나 산들에서 기르거나 캤다. 말기루가 먼저인지 라면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라면은 삼양라면이었고 보통 끓어 먹기보다 생 라면을 뿌셔서 잘 먹었다. 나중에 뿌셔뿌셔가 나왔다. 기업인들은 뭐하나 눈에 띄면 그걸 돈 벌이로 연결해서 팔아먹고 집에서 만드는 것은 자꾸 금지를 해 나갔다. 만들어 먹지 말고 사먹으라고 말이다. 정부는 기업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전차 폭동 사건과 관련된 잡지기사 Magazine Article on Tram Riots. 대한제국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소장이라고 한다. Sunday Examiner Magazine에 실렸던 기사라고 한다. 조선인들이 전차에 대해 이해를 못하고, 전선이나 전주가 가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생각하며 이들을 파괴한 전차 폭동 사건에 대해 적고 있다고 한다. 70년대에 전기 들어왔다. 필자 시골에 어떤 분이 면소재지에 있는 변전소 전깃줄에 올라갔다가 감전되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로 전깃줄이 참 무섭게 보였었다. 전차가 소음도 크고 레일이 있는데 거기에 6살 아이가 치여 죽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데 가뭄을 전차 탓으로 돌렸다니 이해가 안 간다.

전차사고로 인한 어린이 사망과 폭동 사건 1899527황성신문을 보자. 1899526일에 전차 사고로 어린아이가 사망하자, 아이의 아버지와 사람들이 전차 2대를 전복시키고 불태운 사건에 대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처럼 어리석다니 어제 6·7세 된 남자 어린이가 포전 골목 어귀에서 전차에 부딪혀 생명을 잃은지라.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단속치 않았던 것을 뉘우치지 않고 애꿎은 전차를 원망하여 도끼를 들고 전차 지붕을 맹렬하게 찍으니 거리 위의 우준한 무리들이 일시에 작당하여 한 차를 불사르고 한 차는 부수며 말하기를 하늘이 가문 것은 전차의 탓이라 하고 일제히 전기차를 부수러 가거늘 경사가 순검을 파견하여 그 야단하는 자를 하산케 하였다더라.”] 도끼로 전차를 박살냈다고 하니 1976년 판문점에서 있었다는 도끼 만행 사건이 연생된다. 1976년 도끼 만행 사건도 필자는 소설로 본다.

한국인의 악마의 차폭동 신문기사 The Corean "Devil Car" Riots Collier's Weekly1899722| 미국 시사 주간지라고 한다. 낯선 문명의 이기였던 전차는 운행 초기에 인식 부족과 사건 사고로 인해 악마의 차로 불리며 폭동의 대상이 되었고 일본인 운전사 차장이 폭등을 피해 일본으로 달아났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운전사 차장은 뭐지?

그림이 참 기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