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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자선냄비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에 샌프란시스코의 구세군 사관 조지프 맥피(Joseph McFee)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다고 한다. 도시 빈민은 그렇다고 처도 갑작스런 재난은 뭐지 1891년에 갑작스런 재난이 있었다는 것인데 말이다. 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다고, 삼국사기에 왜가 기근에 시달려 신라로 밥 얻어먹으러 천여 명이 왔다는 내용이 생각이 난다.
성탄절을 겨울로 한 것은 돈을 쉽게 뜯어가기 위해서 라고 본다. 추워 웅크리는 사람들에게 감성으로 호소하면 주머니가 잘 열리기 때문이다. 집도 절도 없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도와줍시다. 하면 마음 여린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도 추운데 지갑을 연다. 앞뒤 생각 없이 좋은 일 하란다고 헌혈해서 기절한 필자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조셉 바아) 사관이 서울 명동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 돕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불우 이웃은 누구일까? 도대체 그들이 돕는 다는 불우 이웃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진다. 길거리에서 돈을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자들인가? 그들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웃을 도우라고 하면서 돈을 뜯어가 누구를 도와주는 것인가. 구세군 자선냄비도 적십자사와 같은 것이다. 적십자사도 통, 반장을 통해서 강제로 돈을 뜯어갔다. 우리나라가 7~80년대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돈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시골은 농사지어서 돈을 만질 수 있는 계절이 가을뿐이었다. 벼 수매를 해서 말이다. 밭농사는 식구들 먹는 것만 지었다. 밭에서 나는 콩이나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그것으로 라면도 사고 밀가루도 샀다. 생필품을 직접 만들어 쓰던지 직접 재배한 곡물을 장에 내다 팔아서 얻은 돈으로 사왔다.
1928년에 우리나라에 돈이 있었을까 싶다. 1928년에는 우리나라에는 돈이 없었다고 본다. 엽전이니 그런 것은 역사 날조하고 거기에 필요한 소품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만들지도 못했다. 1959년에 미국에서 동전을 만들어 왔다. 동전도 못 만들었는데 지폐를 만들었다고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는 종이가 수입되기 시작한 것이 1954년이고 제지공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1957년이다. 돈은 특수 종이로 만들었다. 찢어지긴 했지만 우리가 흔히 보았던 백지는 아니었다. 한지로는 돈을 만들 수 없다. 책도 못 만든다.
어려운 사람들이 어려운 사정 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 돕겠다고 하면 주머니를 털어서 기부를 했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 돈 뜯어 가서 그 돈으로 누구를 도와 줬는지는 알 수가 없다. 기부도 사업이다. 많이 기부 받으면 많이 버는 것이다. 그들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이다.
대기업 손자가 기부 사업을 한다. 기부 받아서 기부 받은 돈으로 시설에 물품사서 전달한다고 한다. 대기업은 기부를 해야지 기부 사업을 한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