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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 40.
PART 02 : 궤도와 바퀴는 사람들의 발이 되고 : 변형된 궁궐 : 영추문 앞 전차 선로와 무너진 경복궁 담장 1920년대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을 보자. 영추문이면 경복궁 서쪽 담장 같다. 서쪽 도로가 엄청 넓다. 뒤에 산은 인왕산인가 보다. 인왕산 앞에 담장 안인지 나무가 가지는 가늘고 긴데 잎은 무성하다. 기형으로 그렸다. 뒤쪽 담장 안이 수풀로 보인다. 전봇대가 담장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오른쪽 전봇대는 현실 전봇대에 가깝게 그렸다. 나무의 질감을 살리려고 울퉁불퉁하게 그렸다. 담장은 작은 벽돌 모양으로 촘촘하게 그렸다. 덮개는 함석인지 시멘트 기와인지로 덮었다. 입구는 아치모양이고 제법 큰 석재모양으로 그렸다. 색이 다른데 큰 석재로 쌓아 올렸다.
위에는 빨간 벽돌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기둥에 서까래를 얻고 지붕을 시멘트 기와인지 함석인지를 올렸다, 용마루에는 요상한 장식을 그렸다. 영추문인지 한자 현판이 있다. 전차 레일은 성벽에 바짝 붙여 깔았다고 보인다. 길이 넓은데 성벽에 붙였을까? 성벽 무너진 것을 표현하려니 레일이 성벽에 붙은 것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이미지로 보면 영추문이 무너진 것이 아니고 영추문 옆 담장이 무너졌다. 담장이 무너졌는데 안이 보이지 않는다. 담장이 얼마나 두꺼운지 허물어진 담장이 돌투성이다. 안에 잡석을 넣고 외장만 작은 벽돌 모양으로 쌓은 듯이 말이다. 보기에 전차라고 그린 것 같은데 작다. 길에는 큰 석재들을 널부러 놨다.
한무리의 사람들은 무너진 담 흙벽을 바라보고 있다. 현대식 모자를 쓴 사람들이 많다. 옷도 양복에 와이셔츠에 조끼를 입은 사람도 그렸다. 전차 주변에는 갓에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도 그렸다. 왼쪽에는 사고 현장과 무관해 보이게 그렸다. 한가로이 자기들 갈길을 가고 있다. 어린아이 인지복장이 특이 하다. 세 무더기의 사람들을 그렸다. 영추문 입구 반대쪽에는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부인과 서있는 아이를 그렸다. 아이들 옷이 뒤에서 묶었다. 앞치마인가? 간호사 복장을 저리 그렸던 것으로 다른 이미지에서 본 것 같다. 서양 여자들이 말이다. 경복궁 서쪽 도로는 지금도 그리 넓지 않다. 이 이미지에는 엄청 넓은 길에 전차 레일은 성벽에 붙였다. 기형적인 그림이다. 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이 아니다.
필자가 1997년경에 경복궁에 갔을 때 경복궁 담장도 광화문 건물도 없었다. 198~90년대 광화문은 경복궁 입구가 아니었다. 교보문고와 동아일보 건물이 있는 곳을 광화문 사거리라고 했다. 광화문은 그 일대였다. 어떻게 언제부터 경복궁 입구가 광화문이 되었는가? 덕수궁은 1980년대 후반 돌담길 선전을 많이 했다. 20대 초반인 필자도 친구와 광화문 어디 다방에서 만나 차를 마시고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은 출입 할 수 없었다. 혹여 누가 덕수궁 담을 넘을까 전경인지 의경인지가 쫙 깔려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한 의경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가 말을 걸면 대꾸 안하고 황급히 달아나 버린다. 친구는 엉겹결에 나를 따라 쫓아 왔던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면서 말이다.
1980년대 후반 덕수궁은 돌담길이었다. 1990년 중 후반에 개장해서 필자가 방문 했다. 사진이 남아 있다. 근정전이랑 분수대 앞 등등에서 말이다. 경복궁을 지금의 문으로 들어갔다면 필자가 기억 못 할리 없다. 끝에 민속 박물관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경회루나 근정전 교태전등 전각 앞에서 사진을 안 찍었을 리 없다. 사진이 잔디밭과 소나무 민속박물관뿐이다. 경복궁에는 담장도 전각도 경회루도 광화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