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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20

[100-13] 신문의 역사?

100-13

 

신문의 역사?

 

한국민족대백과 사전의 신문을 보면 신문의 역사에 외국은 빼고 한국을 보자. 근대식 신문이 있기 전에 朝報(기별)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 조보가 근대식 신문의 생성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1883년에 고종이 漢城旬報(한성순보)를 발간했다고 한다. 한성순보는 한국민족대백과사전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미지로 보면 책자 형식이다. 中國光緖九年(중국광서9)이라고 왼쪽 책 가장자리 위쪽에 쓰여 있다. 중국 광서9년은 청나라 11대 황제라고 한다. 1883년에 중국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인가?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로 알고 있다. 청국광서9년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동아일보는 192041일에 설립 창간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구 사옥에 일민 미술관을 개관해서 예전 신문들을 전시한다고 한다. 필자가 신문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동아일보에 전화로 문의를 한 적이 있다. 초창기 신문지 종이 어디서 났는지 말이다.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초창기 신문지를 전시를 했다가 철거를 했다고 한다. 왜 철거를 했을까 나름 생각해 보았다. 필자 같은 사람이 이 종이 언제 만들었냐! 1920년대 만든 종이는 아니다 등등 따지니 대답은 못하겠고 하니 치운 것이 아닌가 한다.

1951년에 아시아재단이 신문지종이를 수입해서 문교부에 기증했다고 하는데. 신문지 종이는 다르게 만든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보는 신문지 종이는 얇으면서 크다. 그 신문지 종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생산을 하기 시작했을까? 오리무중이다.

신문지 종이는 표백처리 안한 재생지로 만든다고 한다. 제지연합회에 신문용지 생산 업체는 3개다. 대한제지()전주페이퍼 그리고 나투라페이퍼()이다.

대한제지는 1959년 대한제지공업() 설립 및 공장을 가동 했다. 59년에 공장가동은 발동기로 했나? 전주페이퍼는 1965년 창립했다. 나투라페이퍼()19963월에 온양팔프라는 회사명으로 공장을 가동했고 2017년에 나투라페이퍼() 사명을 변경했다.

1959년부터 신문지 종이를 생산했다고 치면 그 전에 신문지 종이는 수입을 했다는 것인가. 신문지 종이 수입은 아시아 재단이 신문지 종이 수입해서 문교부 기부해서 교과서 만들었다는 내용뿐이다. 1959년 전에 발행했다는 신문지들은 거짓이라고 봐야 할까? 우리가 전에 누런 A4용지를 많이 썼다. 그걸 갱지라고 했다. 누가 설명하기를 갱지는 재생용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종이를 많이 써서 재활용 종이가 많아서 재생 용지를 만들어 우리는 갱지를 썼을까. 그 재활용 종이들 외국에서 가져 온 것인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요즘 전자화 시대로 신문이 안팔려서 신문은 찍자마자 그대로 계란판 만드는 공장으로 간다고 한다. 계란판은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새 신문으로 만든다고 한다. 계란판은 종이로 만든다고 하는데 그 종이중 상당수가 신문지라는 말인가?

다른 제지회사들 연혁을 살펴봐야 하는데 복잡하다. 전에 제지회사들 연혁을 검색해보니 1957년이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한제지는 1959년이니 아니다. 1957년 제지회사는 어느 회사인가. 아니면 필자가 1959년을 1957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다음에 제지 회사들 연혁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성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