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일백장. 20

[100-35] 메리시 다 카라바조

100-35

 

메리시 다 카라바조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층에서 전시중이다. 전시소개를 보자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2024년 한 - 이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카라바조의 작품 10점을 포함한 바로크시대 작가들의 작품 57점을 국내 최초, 아시아 최다 규모로 선보이는 특별전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강한 명암 대조를 사용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테네브리즘의 창시자이자 사실주의 기법의 선구자로서 바로크 예술의 시작을 알린 카라바조는 38년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100여 점의 작품만을 남긴 카라바조 컬렉션 중 우피치 미술관, 우르시노 성 시립 박물관을 비롯해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등 유럽 전역의 개인 소장 작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카라바조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입니다. -이 수교가 140년이라고 한다.

사후 300년이 지나서야 재평가되기 시작해서 현재에도 작품의 진위 여부를 포함한 다양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300년 전 그림이 아직도 존재하다고 한다. 복제를 해놨었나? 사진을 찍어 놨었나? 복제도 사진도 여러 번 해야 현재에 이를 수 있는 세월이다. 38세에 사망했는데 100여 점의 작품만 남겼다고 한다.

카라바조의 나무위키 프로필을 살펴보자.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이다. 다른 미켈란젤로가 유명하여 본명보다는 출신지에서 따온 카라바조라는 이명으로 알려졌다고 하다. 본명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또는 아메리기 다 카라바조(Amerighi da Caravaggio)이며, 이명이 카라바조이다.

1571929일에 스페인 제국 밀라노 공국 밀라노에서 출생하였다. 161071838세의 나이로 스페인 제국 포르토 에르콜레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부친의 직업은 건축가 또는 석공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1576년인 5살 때 밀라노에 살다가 페스트(흑사병)이 퍼져 고향인 카라바조로 피신했다고 한다. 페스트가 가라앉자 다시 밀라노로 돌아온 카라바조는 미술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13살이었던 1584년 밀라노의 하사 시모네 페테르차조의 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1588년까지 공방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로마로 이주하는 1592년까지 4년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미술 분야에 승승장구 했으나 성격이 매우 불안정해서 진정한 사고뭉치였다고 한다. 술버릇은 고약하기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추기경과 성직자들이 사고를 수습해줬다고 한다. 최상급의 막장이었다고 한다. 1606년인 35살에 로마에서 소문난 양아치였던 라노치오 톰마소니라는 사람과 다투다가 그를 찔러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여자에 대한 품평을 하다가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이다.

카라바조는 살인 후 나폴리로 도망가서 나폴리 유력 가문인 콜로나 집안의 비호를 받으며 지내다 몰타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한다. 도피 행각 중 160938살에 나폴리에서 자객의 습격을 당했지만 죽지는 않았고, 1610년 여름 피렌체에 가기 위해 잠시 들렀던 포르토 에르콜레 해변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39살이다. 카라바조는 어릴 때부터 이사내지 이주와 도망을 다녔다. 성격도 불안정했다고 한다.

카라바조가 새 시대를 연 예술가라고 한다. 어두운 배경 속에 중심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드를 비추어 극단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의 개척자였다고 한다. 연극공연장을 연상시킨다. 연극 공연을 보고 아이디어 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연극에 조명은 언제부터 쏘게 되었는가? 연극이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어 조명을 쏘게 되었을까?

카라바조가 술주정뱅이이고, 술버릇이 고약했다고 한다. 술버릇이 폭력적이었을까. 카라바조의 대표작이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여자가 건장한 남자를 참수하는 장면이다. 여자 얼굴은 미간을 찌푸리는 정도의 얼굴이고 참수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있다. 참수하는 여자의 팔은 건장한 남자의 팔이다. 여자 몸에 남자 팔을 갖다 붙였다. 참수당하는 남자는 저항 없이 놀라는 표정일 뿐이다. 남자가 힘이 없다. 죽이는 여자 옆에 노파가 서있다. 노파의 표정은 눈을 부름 뜨고 입을 앙 다물고 있다. 그림 주석에 최근 같은 주제로 그려진 300년간 실종됐던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이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집주인이 지붕을 수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그림이 300년 동안 안 썩고 존재 했다고 한다. 쇼팽의 신곡 200년 만에 발견과 같은 맥락이다.

그림의 특색을 달리해서 사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사조에 맞는 화가들을 탄생 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림을 언제 누가 그리기 시작했을까? 그림은 도구가 필요하다. 크레용부터 말이다. 크레용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미술 도구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뤄보기로 하자.

Arts&Culture에 카라바조 그림의 남자 나체가 있다. 미소년이다. 얼굴은 아이 얼굴로 보이는데 주름이 있다. 몸은 건장해 보인다. 얼굴과 몸이 매치가 안 된다. 얼굴과 몸을 합성한 느낌이다.

미술에서 만들기가 제일 먼저 발전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진흙 만들기 말이다. 흙으로 만드는 것은 재료가 흙이다. 흙은 지구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필자도 국민 학교 때 또랑에서 진흙을 캐서 를 만든 적이 있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혼자 잘 만들었다고 뿌듯해 했다. 돈이 안 드는 흙 미술은 발전이 안 되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도구들이 필요한 그림들이 발전했다. 재료 만들어 팔아먹기 위한 상술이다. 돈 안들이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죽여야 한다.

현대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돈을 얼마를 썼냐로 호기심을 갖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에 연구계획서도 그렇고,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직접 쓴 것은 인정을 안 해준다. 아무래도 허접하다. 전문가가 정리해준 것보다는 말이다. 검사 자는 얼마나 진실 되게 사실적으로 썼는가를 보기보다 얼마나 매끄럽고 현혹되게 썼는가를 보는 것 같다. 사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그들만이 알아 볼 수 있는 아 이건 돈을 들였구나’, OK이고 이건 돈을 안 썼네 불합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암묵적 뭐 그런 것이 있는가?

연극 조명 기법으로 보인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