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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구획정리?
토지구획정리란 도시계획을 통해 정비되지 않은 땅을 정비구역으로 설정하고, 토지의 구획을 변경하여 토지의 용도를 다시 설정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토지의 교환과 분합 등의 환지방식을 통해 공공시설을 확보하고 시가지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환지는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의한 도시개발사업을 하는 경우 종전의 토지 중 돌려줄 토지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땅을 빼앗았다가 돌려준다는 말인가? 이해하기가 힘들다.
국가기록원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1934년 6월 20일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하여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해 11월 20일 나진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을 효시로 전국 각 도시에서 사업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1962년에 새로이 「도시계획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1966년에 단독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법」(1966.8.3. 법률 제 1822호)도 제정되었다고 하다. 198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서 택지개발의 전형적인 수단으로 1984년까지 전국의 397지역에 걸쳐 약 436㎢의 토지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개발 · 공급되었다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는 총 93㎢에 달하는 주거용지와 41㎢에 달하는 공공용지가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의해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크게 계획 · 개발 · 한지의 3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토지구획정리를 위의 내용과 다르게 본다. 본심을 숨기는 것이다. 토지구획정리의 본심은 세금을 걷기 위한 구획정리라고 본다. 1934년에 조선시가지계획령은 없었다. 조선도 일제강점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1966년에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을 제정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필자의 추측은 1980년대 중반으로 본다. 이 땅에 낮선 사람들이 들어온 것은 1800년대 중반으로 본다. 그들은 이 땅의 사람들을 많이 잡아다 하와이, 오키나와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서 종으로 부려 먹었다고 본다. 그 당시 어린아이들도 잡혀가 종으로 부려 먹었다. 유일한과 주미대사관을 지냈다는 양유찬을 통해서 추정한다.
그들은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조사를 했을 것이다. 첫째가 인구였다.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을 조혼을 시켰다. 조혼으로 자녀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 1940년대 후반 50년대 초이다. 1950년대 중반에 국민 학교를 만들었다. 그들의 목적은 공장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농사는 글을 몰라도 짓지만 공장에서는 글을 알아야 부려먹기 수월하다. 1963년에 지방조직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앙정부는 1987년 노태우를 내세워 탄생시킨 것으로 본다. 1987년에 노태우로 중앙정부를 출범시키고 전국에 토지조사를 한 것이다. 1988년 12월 31일에 조사를 마쳤다. 부천시와 서울시의 토지 대장을 보고 추정한다. 토지조사를 해서 등기가 안 된 땅은 1989년 4월 12일에 서울시가 소유권 보전을 해버렸다.
공시지가(公示地價)는 국토교통부가 토지의 가격을 조사 감정해서 공시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1989년부터이다. 토지조사로 토지구획을 정리한 다음에 공시지가를 만들어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1989년 공시지가를 만들어 1990년부터 세금을 걷기 시작했다. 전국에 땅이 주인이 있지만 등기가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다.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명당자리 찾아서 여기저기 아무데나 장례를 치렀다. 세금을 내니 내 땅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무덤 파가라 했다. 1990년대 초반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선친묘들을 이장해서 가족묘를 만들었다. 전에는 아무 산에서나 나무를 해서 연료를 충당했다. 90년대 산 주인이 나무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산 없는 사람들은 겨울에 얼어 죽으라는 것이다.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