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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20

[100-69] 거문도 해저(海底)케이블?

100-69

 

거문도 해저(海底)케이블?

 

해저(海底)케이블의 해저(海底)는 바다 밑바닥이다. 바다 바닥에 케이블을 깔았다는 것이다. 케이블이 바다에 가라앉을 만큼 무겁던지 아니면 바다 바닥에 고정을 해야 한다.

해저(海底)케이블의 역사를 먼저 보자. 최초의 해저 전신 케이블은 1850년 영국과 프랑스 간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대서양에서는 1858년 아일랜드와 북아메리카의 뉴펀들랜드 섬 간에 연결되었으나 절연 실패로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절연체위에 씌워진 강철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1884년 부산과 나가사키 사이에 전신용 해저(海底)케이블이 처음으로 깔렸다고 한다. 다음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거문도를 잇는 해저(海底)케이블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러일 전쟁 때인 1904년에 울진에서 울릉도까지 설치되었고, 1905년에 울릉도-독도-일본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소식이 없다가 198011월 일본과 이어지는 해제 케이블이 정식으로 깔리면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해제케이블이 깔렸는데 사용하지를 않았는가?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1980년에 새로이 해저(海底)케이블을 깔았다고 한다. 딱 각이 나온다. 1980년에 최초로 해저(海底)케이블이 깔린 것이다. 그래놓고 역사를 뻥튀기해서 1884년에 해저케이블이 최초 깔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에 무엇으로 해저(海底)케이블을 까나 전기도 없었다.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는 1960년대 물레방아 전기를 썼다. 서울은 1969년 당인리 발전소를 통해서 서울에 전기를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1969년 이후로 서울에는 전기가 보급된 것으로 보면되겠다.

전기도 없는데 통신이 가능하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학계는 반성하라. 우리나라 이동통신 사업은 198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출범했다. 차량전화와 무선호출 등 무선 종신 서비스를 전담했다고 한다. 1980년에 일본을 통해서 해저(海底)케이블이 들어왔고 몇 년의 작업 끝에 1984년 이동통신 사업을 시작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전 세계 국제전화와 인터넷의 해외 연결망 트래픽은 약 90%가 해저 광케이블이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10%는 누가 하는 가? 인공위성의 트래픽은 해저 케이블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필자는 인공위성은 가짜로 본다. 다음에 인공위성에 대해서 다뤄보기로 하자. 9%가 출처가 없다.

1885년에 거문도에 영국이 해저(海底)케이블을 깔았다고 해서 필자는 뜨악했었다. 상하이에서 거문도까지 해저케이블을 깔았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상하이에서 올라오면 추자도나 진도가 더 거리적으로 나을 것 같은데 거문도라니....1885년에 케이블 전선이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도 없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거문도가 선택되었는가? 궁금하다. 전라남도 여수시 삼호교길 11-75(삼산면)에 해저통신시설 유적지가 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기획재정부가 소유자다.

국가유산 설명에 19세기 말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상하이와 거문도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로 관련 사례와 그 흔적이 많지 않으며, 시설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영국군의 불법점령 사건과 연관된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성의 의미가 큰 유산임.이다. 1884년에 통신시설을 깔았는데 통신이 안 되다가 100년 후에 통신이 되기 시작했다. 양심의 가책 없이 가짜 유적을 경복궁을 비롯해 마구 만들어 내는 대한민국정부다.

해저 케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