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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산동면 월석리 산118-6번지의 등기부에 대하여
오늘은 서울의 전차가 아닌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등기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필자네 집은 필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한지공장을 운영하셨다. 70년대 중반 공장은 돌아가지 않았다. 필자 집 마당에는 농구기구가 한 가득이었다. 경운기와 타작 기계 등이었다. 아버지는 농기계로 남의 집 논밭을 갈아주거나 타작을 해주는 것으로 경제적인 것을 해결하려고 하셨던 것으로 판단된다. 어느 날 필자 집 마당에 있던 농기계와 소까지 다 사라졌다. 필자는 그때 국민 학생이었다. 집에 농기계가 사라지고 아버지는 술을 드시기 시작했지만 마냥 천진난만했다. 6학년 졸업 무렵에 중학교 보내달라고 며칠을 떼를 썼다. 결국은 못 갔다.
필자 집 농기계가 사라진 이유를 2013년에야 알았다. 농협에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농기계 값을 다 갚았는데 안 갚았다고 하면서 농기계와 소를 압수해 간 것으로 보인다. 영수증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그들이 안 갚았다고 하면 영수증이 없으니 증명할 방법이 없어 압수를 당한 것이었다. 언니도 중학교를 못 갔다. 국민 학교졸업하고 이모네 시누가 소개시켜줘서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다.
남원시 산동면 월석리 산 118-6은 1970년대 초반 작은아버지께서 마을 산을 샀다. 118의 땅을 7명이 분할해서 산 것으로 보인다. 작은아버지께서는 그 땅을 사서 2년 동안 개간을 하셨다. 옆에 개울이 있고. 샘물이 나오는 곳이다. 샘물이 나오는 곳부터는 논을 치셨고, 그 위에는 밭을 치셨다. 그리고 이사를 올라갔다. 올라가기 전 친 밭이 부족했는지 더 밭을 치겠다고 검불을 태우다 불이 났다고 한다. 두 번이나 그래서 몇 년 만에 내려 오셨다. 그 땅을 언니가 식모살이 하면서 번 돈들과 합쳐서 억지로 샀다. 우리에게 팔겠다고 했다가 다른 데로 팔기로 모의하는 것을 어머니께서 아시고 쫓아가서 사신 것이다.
필자는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이었다. 그 땅을 사서 엄마랑 농사를 지어서 이고 지 날랐다. 우리 산이라고 나무도 해서 날랐다. 그러다 필자도 객지로 나가고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고 그 땅을 묵은 땅이 되었다. 둘째 오빠가 귀농해서 밭을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귀농해서 밭을 쳤는데 옆 산 주인이 자기 땅을 침범했다고 한다고 한다. 우리 땅이 그 밭 친 땅보다 넓은데 왜 땅을 침범했다고 하지하면서도 말을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 충주에서 이장과 시청직원이 지적도를 조작해서 해먹었다는 것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다.
혹시 우리 땅도 그러지 않을까 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작은 집 오빠에게 전화해서 그 땅이 몇 평 인지부터 물었다. 5,000평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집 둘째 오빠에게 그 땅이 몇 평인지 물었다. 5000㎡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으로 말하지 않고 제곱미터라고 대답을 한다. 5,000㎡는 1,500평이다. 3,500평이 날라 갔다. 네이버 지도와 시 지적도와 같은지 확인하기 위해서 지적도(임야도)를 떼어 봤다. 네이버 지도와 똑같았다. 필자는 2011년부터 필자 시골 동네 액비저장조 때문에 남원시와 산동면에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2013년에 KBS 우리 사는 세상에 제보해서 촬영을 하고자 했으니 KBS는 액비저장조는 방송하지 않고 도로을 찍어서 방송을 내보냈다. 필자 티스토리에 기록이 있다.
EBS 화풀이에 출연해서 액비저장조 장면이 방송에 나갔다. KBS는 액비저장조 방송을 거부했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그러면서 면사무소도 여러 번 들렀다. 그때 월석리 산 118-6번지 임야도를 본 것으로 생각된다. 면사무소에서 밖에 볼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 임야도에는 소유주 이름이 써져 있었다. 우리 산 뒤에 우리 집 씨다른 작은 아버지들 이름들이 있었다. 그때 본 임야도와 지금 임야도는 비슷하지도 않다. 완전히 다르다. 그 위에 작은 아버지들 산과 크기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비등비등했다. 지금 임야도는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시청에 전화해서 예전에는 소유주 이름이 있었다고 하니까 직원 말이 그랬는데 소유주가 자주 바뀌어서 번지로 변경했다고 한다. 언제 변경했냐고 하니 답변을 안 한다. 신문고 민원을 넣었다.
2013년에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간한 법률] 72조 답변을 받았다. 72조는 2013년 3월 23일에 개정을 했다. 그러면 개정전의임야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름이 써진 임야도는 없다. 산동 면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1990년대 뽑아 논 비치용 임야도가 있다고 한다. 보내 달라 했다. 앞 번호가 없다고 한다. 뒷 번호라도 보내 달라고 하니 800번대 부터 있다고 하면서 보내 줄 수 없다고 한다.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답변을 안했다. 나보고 오라고만 한다. 면장은 800번대도 없다고 한다. 증거인멸을 했다는 것이다.
행안부 직원을 통해서 등기부를 떼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등기가 현등기, 구등기, 폐쇄등기가 있다. 구등기는 한자와 한글이 혼용이다. 산118-6을 떼어 봤다. 파일번호가 201633549이다. 2016년에 생성된 파일이다. 유튜브에 이 내용을 올렸다. 그 다음에 다른 번지 등기를 떼어 봤다. 118-1은 파일번호가 0536~ 으로 시작한다. 생성년도가 사라졌다. 118-2는 0540~, 118-3은 0543~, 118-4는 0546~, 118-5는 0021~, 로 시작한다. 118-7은 0028~로 시작한다. 118번지 마을 땅을 1970년대 초반에 7명이 분할을 해서 샀으면 같이 등기를 하지 않았는지 파일번호가 질서가 없다. 90년대까지도 이장들이 알아서 다 하던 시절이었다.
산118-6을 구등기를 먼저 보자. 1971년 8월 11일에 접수를 했다고 한다. 면적은 5단보이다. 접수 필기구와 5단보 필기구가 다르다. 필체도 다르다. 갑구에 분할에 위한 전사가 있다. 갑구 순위번호 1번 사항란 : 분할에 인한 전사/ 이전/ 접수 1934년 1월 19일 제 891 호/ 원인 1933년 12월 27일 매매/ 취득자 김성홍(金性洪) 남원군 산동면 월석리 260번지/ 김한준(金韓㻐) 동노 342번지/ 류양춘(柳瀁春) 동노 365번지/ 박기순(朴基淳) 동노 307번지/ 임주원(林周元) 동노 240번지/ 오재석(吳在錫) 동노 302번지/ 등기부 제 656부 136장으로부터 전사함/ 접수 1971년 8월 11일/ 제 6250호/
순위번호 : 2번/ 사항란 : 이전/ 접수 1971년 8월 11일 제 6256 호/ 원인 1965년 10월 5일 매매/ 취득자 김용태(金容太)/ 남원군 산동면 월석리 342번지/ 범률 제 2111호에 의함. 순위번호 1번은 차치하고 순위번호 2번에 취득자가 김용태이다. 1965년에 매매해서 1971년에 등기 접수를 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 작은아버지 함자는 김봉규이다. 김용태가 아니다. 작은집 오빠와 필자집 둘째오빠, 필자 동네에서 이장을 하셨던 분의 증언은 마을 땅을 7명이 분할을 해서 샀다고 한다. 마을 땅의 흔적은 없다. 취득자도 필자 작은아버지가 아니다. 필자 동네에서 필자 집은 호구였는가 하는 충격에 가슴이 벌렁거려 청심원을 먹었다.
사항란 1번의 6명의 집 주소를 검색해 보았다. 두 집만 알아 볼 수 있고 나머지는 없는 번지거나 성씨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오씨집 주소는 임씨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번지는 있는데 집이 없기도 하다. 확인된 집은 현재 이장집이 김한준은 이장의 할아버지로 추정되며 김용태는 이장의 아버지이다. 또 한 번지는 유선생이라고 국민 학교 선생님을 하신 분의 동생 집이다. 그 동생은 필자가 기억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 집 아들이 필자와 함께 국민 학교를 다녔다. 그 아들이 어릴 때 돌아가셨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갑구 사항란 1번 때문에 118번지를 찾았으나 없다. 118에 대한 내용은 118-1에 있다는 법원 등기소 직원의 답변에 118-1를 번역을 의뢰 했으나 번역은 안 해주고 한자만 받았다. 한글로 변환을 할 수 있게 말이다. 참 치사하다.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보다.
118-1을 보자. [登記番號 : 第參貳四四號/ 表題部/ 表示番號 : 壹番/ 表示欄 : 受付 昭和七年七月拾壹日 南原郡 山東面 月席里 山百拾八番地 林野貳拾陸町壹反五畝步]를 한자자를 한글로 변환해보자 [등기등기번호 :제삼이사사호/ 표제부/ 표시번호 : 일번/ 표시란 : 수부 소화칠년칠월십일일 남원군 산동면 월석리 산백십팔번지 임야이십육정일반오무보]이다. 원문이 유성펜으로 쓴 것 같다. 118-6은 똥이 나오지 않는 볼펜과 수성펜으로 쓴 것으로 보였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전자촬영을 한 것으로 보였다. 118-1은 유성펜으로 썼는지 글씨가 크고 굵다. 소화 7년이면 1932년이다. 그때 유성펜이 있었나 보다. 한자가 필기체로 알아 볼 수 없어서 법원 직원에서 몇 번을 전화로 물었다. 나중에 마지못해 읽어 주었다. 소화 어쩌고 했고 임야 26정 1단 5무보라고 26이라고 했다가 21로 바꾸었다. 필자가 처음에 26을 받아썼다. 다행인지 그것을 지우지 않아 6을 쓴 흔적이 있다.
한자로 변환할 수 있게 해준 곳은 6이라고 했다. 反(반)자도 남원법원 등기부와 남원시청은 단자라고 한다. 反(반)자는 필자도 안다. 반자 뜻에는 단이 없다. 이렇게 공무원들이 안하무인이다. 무조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우긴다. 남원시청에 전화를 했더니 면적을 계산을 해보라고 한다. 118-1에서 7번까지 면적을 계산을 해보았다. 시에서 주장하는 21정이다. 5정이상이 사라졌다. 원 등기에 1반이라고 적혀 있어서 반이 얼마를 말하냐고 물었더니 단이라고 한다. 엄연히 한자는 反(반)이다. 이것을 단이라고 한다. 자기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한자까지 자기들 맘대로 해석해 버린다. 공무원이 1을 100이라고 했으면 1이 100이 되는 것이다. 시청 문서에는 21정 1단 5무보로 기록되어 이다. 필자는 순식간에 까막눈이 되어 버렸다. 시청 기록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맞게 법원 등기소 직원도 6을 1이라고 읽어야 하는 것이다. 아래 이미지를 보자 소화 7년과 1971년 글씨가 굵기와 필체는 다르나 선명하다. 세월에 흔적이 없다. 방금 써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위 책 종이도 세월의 흔적으로 누런 것이 아니다. 원래 누런색으로 만든 종이로 보인다.
아래 표는 118의 전체 면적과 1~7번의 면적을 계산한 표이다.
산 118번지 면적 표
번호 | 번지 | 옛 면적?(정단무보) | 평 | ㎡ | 비고 |
1 | 118 | 26정 1반 5무보 | 79,650 | 263,305.785 | |
1정 : 3,000평/ 1단: 300평/ 1무 : 30평/ 1보 : 1평 | |||||
2 | 118-1 | 3정 1단보 | 9,300 | 30,743.8017 | 김○○ |
3 | 118-2 | 2정보 | 6,000 | 19,834.7107 | 이○○ |
4 | 118-3 | 6정 4단보 | 19,200 | 63,471.0744 | 유○○ |
5 | 118-4 | 2정 2단보 | 6,600 | 21,818.1818 | 박○○ |
6 | 118-5 | 2정 7단 2무보 | 8,160 | 26,975.2066 | 박○○ |
7 | 118-6 | 5단보 | 1,500 | 4,958.67769 | 김○○ |
8 | 118-7 | 4정 2단 3무보 | 12,690 | 41,950.4132 | 황○○ |
합계 | 21정 1단 5무보(?) | 63,450(16,200) | 209,752.066(53,553.7189) |
옛 면적 [정단무보]는 필자는 처음 봤다. 역사 연구를 하면서 도량형을 들여다봤었다. 본 기억이 없다. 우리는 흔히 임야 몇 평이라고 하지 몇 정은 어려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필자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기억하는 편이다.
법원 민원 답변을 보자. “등기사무는 등기관이 독립적인 직무권한을 가지고 자기의 판단과 책임 하에 법률 및 예규, 선례 등 관련 규정에 따라 그 등기 신청의 수리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등기관은 사장도 하고 직원도 하고 혼자 다 한다는 말이 된다. 독립적인 직무권한에 자기 판단으로 업무를 보니 말이다. 월급은 세금으로 받아가고 법원에 종속되어 있다. 법원 조직은 직원에게 사장 권한도 주었다고 한다. 다음 답변을 보자. “부동산등기는 그것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로부터 적법한 등기원인에 의하여 마쳐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등기가 원인이 없이 마쳐진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쪽에서 그 무효 사유를 주장 ・ 입증할 책임을 지게 됨을 알려드리며, 구체적인 법률관계는 변호사, 법무사…”이다. 답변이 추정된다고 하면서 추정을 뒤집으려면 니가 입증해라 이다.
등기는 우리가 작성하지 않았다. 현실과 달라서 이의를 제기 했더니 쓰지도 않은 사람보고 입증을 하라고 한다. 이것은 의료사고와 같다. 의료사고는 보통 수술방에서 일어난다. 수술실에는 환자 보호자는 들어 갈 수 없다. 환자는 마취 상태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한패이다. 의학 지식이 없는 환자와 보호자 보고 의료사고를 입증하라고 했다. 환자 보호자가 어떻게 입증을 하나? 지들이 등기 쓰라고 하고 안 쓰면 무허가니 어쩌니 하면서 철거반을 보내 강제 철거도 한다. 산을 등기를 안 하면 어떻게 되지? 누군가의 땅으로 편입이 되나? 아님 국가 땅이라고 우기나? 남원시청 민원과 과장은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해 줄 것이 없다고 한다. 지들이 문서를 멋대로 만들고 수정은 안한다는 것이다. 한자도 내맘대로야 내가 1을 10이라고 하면 10이 되는거야다.
갖은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필자는 갖은자를 보고 직감했다. ‘이것은 사기다’라고 말이다. 누군가가 고칠까봐 한자를 어렵게 썼다고 한다. 1자도 나중에 누군가가 고치면 그것은 티가 난다. 어렵게 쓰면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8을 1이라고 하면 1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이 됐다. 6을 1이라고 하고 反(반)을 단이라고 하니 말이다. 反(반)자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익히 아는 글자도 反(반)을 단이라고 한다. 갖은자는 일반자에 정체자, 간체자, 신자체 그리고 기타가 있다. 갖은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기들 뜻에 맞게 숫자를 만들려면 말이다. 한자가 오래전 보다 뜻이 많아졌다. 좋은 뜻 나쁜 뜻 다 들어 있다. 한 글자 안에 선과 악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한자이다.
땅문서 집문서를 보자. 드라마나 영화에서 집을 뒤져 땅문서를 들고튀는 내용이 많았다. 그 문서는 계약서가 아니고 등기권리증이다. 등기권리증은 등장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필자는 등기권리증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내용을 현실로 믿은 것이다. 누군가가 옛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와서 이거 내 땅이요. 내 집이요 하면 그 사람은 공문서 위조 범이요. 사기꾼인 것이다. 땅 찾기 땅문서는 다 조작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118-7번을 보자. 118-7번은 황○○이다. 등기부에 주민번호가 없다. 주소도 황○○이 살던 집 주소가 아니다. 없는 주소다. 돌아가신지 수십 년이 되었어도 자식들에게 상속이 안 되었다. 아직도 황○○이다. 법원에 물어 봤다. 주민 번호 없어도 주소만 맞으면 된다고 한다. 주소는 오픈되어 있다. 누가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등기 신청하고 자기 집 주소만 넣으면 그것은 그 사람 땅이 되는 것이다. 땅 갖기가 참 쉬웠다. 법원 직원이 그것도 관리자가 그런 대답을 한다. 그렇게 어이없게 작성된 등기를 사실이라고 믿으라고 이의 있으면 니가 증명하라고 한다.
필자 집은 아버지께서 하던 한지 공장이 망하고 작은아버지는 아버지를 험담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형제들도 서로 헐뜯기 바쁘다. 니가 뭘 알아 하면서 필자 여동생은 지 친구에게 나를 어떻게 말을 했는지 한번은 나를 구경하려 왔었다. 필자는 밖에서 하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동생친구가 나를 보겠다고 얼굴을 들이 밀 때 나도 들이 밀어 줬다. 나를 보더니 놀래서 가버린다. 인사도 안하고 가버린다. 동생 말과 달랐는지 암튼 가족이 반목하면 호구가 된다. 작은집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그 땅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았을 테인데 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 형제들은 다들 제각기 그 땅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언니는 작은집 땅을 안사고 다른 사람 땅을 샀다고 한다. 언니는 그 땅을 살 때 서울에 있었다.
귀농해서 밭을 친 둘째 오빠는 김용태의 자녀에게 그 집 할아버지 성함 좀 물어 보라고 하니 무서워서 못 물어 본다고 한다. 이제 와서 뭘 어쩌냐고 한다. 남 성격은 그렇게 배려하고 호구가 되어 주면서 동생에게는 그렇게 인색하게 굴었다. 공부하겠다는 동생 발로 차 기절시키는가 하면 둘째는 공부한다고 학원비 좀 달라고 했는데 십 원도 안줬다. 한번은 누가 직장을 소개 시켜줘서 면접 보러 가야 하는데 차비 달라고 하니 안주고 가버렸다. 면접을 못 봤다.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다. 눈물이 난다. 이번 일이 너무너무 힘들다. 배운 조카들이라도 협조를 해주면 좋으련만 전화도 안 받는다. 그들은 뭘 배웠을까? 이제 장성해서 결혼도 하고 자녀가 둘이상이다. 가장들이다. 자기 식구만 챙기면 되지 도움도 안 되는 고모는 싸가지 없이 굴어도 된다는 인식 같다. 이제 조카들 짝사랑도 끝내려고 한다. 예의 없는 조카들은 이제 아듀다.
필자는 최근에 운동기구에서 운동하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팔꿈치까지 기브스를 했다. 팔 부러지고 몇 군데 이야기를 했다. 한 사람은 문병 온다더니 안 온다. 2주 동안 손톱도 못 자르고 부엌은 엉망이다. 이제 팔꿈치는 자유로워졌고 손톱은 스스로 잘랐다. 아직 싱크대는 엉망이지만 혼자 잘 버텨준 필자가 대견하다. 아직 한 달을 기브스 해야 하지만 잘 버텨 내리라 믿는다.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혼자서 꿋꿋하게 말이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정부와 당당하게 독하게 싸울 것이다. 가짜역사와 조작된 등기를 바로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