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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장

100-11 고종이 11명이다.

100-11

 

고종이 11명이다.

 

   고종 사진은 1884년이 최초이다. “퍼시벨 로웰”이라는 사람이 찍은 고종과 같은 해 같은 날인지 3일 후인지 지운영이 찍은 고종이다. 실록에는 기록이 없고 윤치호의 일기에 기록이 있다고 한다. 3월 10일과 13일에 시궐하여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얼굴도 풍채도 다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미국 문서보관소에서 가지고 있는 고종 사진은 1907년이라고 날짜와 함께 우리나라 드라마 사극에 나오는 대감 모자를 쓰고 있고, 1907년인데 상당히 고령으로 보인다. 안경도 썼다. 얼굴이 갸름한 형이다. 옷도 양반 옷이다. 그런데 그림 같다.

   1904년 고종은 또 다른 사람이다. 눈이 몰려 있고 코가 오똑하다. 1884년 지운영이 찍은 사진의 고종보다 젊어 보인다. 연령대가 비슷해 보이긴 하다.

   1907년에 찍었다는 제복 입은 고종은 두 사람이다. 한사람은 얼굴이 둥근 편이고 키가 작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포즈를 위하고 찍었는데 왼쪽 가슴에 휘장이 4개 있다. 다른 사람은 왼쪽 가슴에 휘장이 6개이며 머리는 살짝 대머리이다. 왼쪽 훈장 가운데 것은 하나는 단추를 피해서 옆구리 쪽으로 달았다. 역시 키는 작다. 둘 다 탁자에 한 손을 올리고 한 손은 칼자루를 쥐고 있다. 탁자에 올린손이 한사람은 폈다. 한 사람은 살짝 오므렸다. 탁자의 천 모양도 다르다. 뒤 배경인 문인가 병풍인가도 다르다. 한쪽 사람은 붓꽃이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의자가 있다. 한쪽은 의자가 없다. 살짝 대머리인 고종황제는 배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발모양도 포즈도 틀리다. 구두를 신고 있다. 1907년에 우리나라에 구두가 들어왔다는 것인가?

   또 다른 1904년 고종황제 사진은 또 전혀 다른 사람이다. 양장을 입었고 휘장은 하나 달았으며 가슴에 금줄인지를 오른쪽에서 단추 쪽으로 휘장을 둘렸다. 키는 작고 배는 상당히 나왔다.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다. 손잡이가 화려해 보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역시 구두를 신었다. 투구 같은 모자를 썼다. 뒤에 배경은 커튼으로 보인다.

   순종과 고종이 금박 장식의 화려한 양의를 입고 찍은 사진도 있다. 고종은 가슴에 휘장을 둘렀다. 투구 같은 모자를 썼다. 어깨솔도 화려하다. 배경은 대리석 계단에 빨간 카펫이 깔려있다. 빨간 벽돌에 문이 유리문이다. 우리 문은 안으로 활짝 열려있다. 강화유리문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건축에 사용되었나?

   1907년, 1905년, 1910년 홍순문의 『서울 풍광』에서는 같은 사람들이다. 옷도 같다. 배경만 다르다. 두 개는 벽돌배경이고, 두 개는 배경을 지웠다. 하나는 연도가 없지만 세 개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장소에서 2년 3년 과정으로 찍었다는 것인가?

   1900년대 초반에 이미 현대식 건물이 있었다는 것인가. 대리적 계단에 벽돌 외장에 문은 유리문이 있었다는 것인가?

서양인의 최초의 책 퍼시벨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실린 고종 사진이 내가 보던 키 작고 뚱뚱한 고종이 아니어서 고종 사진을 모아 봤다. 11명이상이다. 어떤 사진은 흐릿하지 만 풍채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