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00일 100장

100-6 이승만이 감옥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100-6

 

이승만이 감옥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이승만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어 이거 감옥 아닌데그리고 이승만이 입고 있는 옷은 스님 옷이다. 오른손에 키를 들고 있다. 일하는 사람이다. 스님 옷을 중죄 수 복이라고 한다. 가슴에 띠는 포승줄이라고 한다. 포승줄로 손발을 묶지 가슴을 묶나? 다른 사람들도 전혀 죄수 같지 않다.

  해서 추척하기 시작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에 지엇다고 한다. 이승만이 찍은 년도는 1903년이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전화로 문의를 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에 지엇고 하고 배경도 다르다고 했더니 한성감옥이라고 한다.

한성감옥을 찾아보니 나오는 것이 없다. 이승만 사진 외에는 국산편찬위윈회에서 황성신문에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승만 외에 여러 명이 감옥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람들만 사진을 찍었고, 다른 사람들은 안찍었나? 다른 사람들도 찍은 사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위키백과 이승만 한성감옥 사진을 클릭하면 사진 찍은 날짜가 그동안 알려진거와 다르게 1899년으로 되어 있다. “1899년 한성감옥시절 때 이승만 박사라고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왜 미상일까?

  감옥의 배경을 보면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벽돌집이다. 바닥은 석축으로 받치고 벽돌을 쌓아 올라갔다. 창문은 작은데 나무창이다. 다른 사진에 보면 작은 창에 쇠창살이 있고 철망으로 막고. 마지막에 나무로 창문을 만들었다. 1899년 내지 1903년에 쇠막대기가 있었고 철망이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전당포 건물로 보인다. 빨간 벽돌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의 말로는 1970년대부터라고 한다.

  한성감옥 사진은 1970년대 이후에 찍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사진이 공개된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70년부터 현재까지로 볼 수 있다.

  기독교가 이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선교사들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수천 만 구원의 밀알이 된 이승만의 한성감옥이라고 한다. 한성감옥 사망자 명단도 있다. 명단은 영어로 되어 있다. 영어 필기체로 써져 있는 것을 이승만 기념관에서 공개하고 있다. 한성감옥을 외국인들이 운영을 했다는 말인가?

  한성감옥에서 죄수들이 도서관을 만들어 돌아가서면 사서를 했고, 외부인에게까지 책을 빌려주었다는 장부가 있다. 그 장부는 1980년대 이후의 노트로 보인다. 책도 다양하다. 영어책 한자책 한글책 그 책들은 어떻게 구입해서 비치하게 되었을까?

이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찍었다는 사진 왼쪽 스님복장에 키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승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