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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태극기
정율성은 1914년 광주 출신에 중국인 작곡가라고 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을 공부했다고 한다. 1948년 2월 8일 북조선인민위윈회 위원장 김일성으로부터 포상장을 받았다. 상장 중앙에 무궁화가 예쁘게 그려져 있다. 무궁화 양옆으로 태극기가 양쪽에 7개씩 그려져 있다. 사각 테두리는 리본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나무위키 주석에는 이 시기 북한은 아직 인공기를 사용하지 않고 태극기를 사용하던 때라고 한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는데 기를 남의 나라 것을 쓰는지 이해가 안된다. 북한은 아무 준비 없이 나라를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김일성 남북연석회의 연설 육성이라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남북연석회의는 어디서 했는가 보니 평양이다. 1948년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평양에서는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의 명분은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남북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4월 19일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서 남한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이를 위해 투쟁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날 회의의 영상은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하여 기록영화에 담겼다고 한다.
김일성이 단상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뒤에는 가운데 한반도 지도와 양옆에 태극기가 아주 크게 붙어 있다. 남북 연석회의인데 그것도 북한에서 하는 회의에 태극기가 크게 붙어 있다. 남북이니 남쪽기와 북쪽기가 한반도 지도 양옆을 장식해야 하지 않을까 둘 다 태극기를 썼다는 것인가. 48년 2월까지 태극기를 사용했으니 4월 달에도 태극기를 단상에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김일성은 북한을 만들고 남한은 나라를 만들지 말라고 단독선거와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자고 했다. 김일성이 투쟁을 하자고 하지, 그럼 48년도까지 남과 북이 하나였다는 말이 된다. 남의 나라 그것도 남의나라 수령이 남의 나라 선거와 정부수립 반대를 위해서 투쟁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남북전쟁영화를 찍기 위해서 남조선 북조선으로 나누었다가 조선이라는 이름은 북한이 가져가고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가지기로 합의를 봤나 싶다.